'존경하는 우리 선생님'은 옛말
작년 교보위 개최 4234건 달해
"신고 안한 교권침해 몇배 더 돼"
교사 58% "최근 1년 이직 고민"
단순히 교육의 공급자로 전락해
법·제도적 보호장치 보완 목소리
#. 교사 A씨는 문제 행동을 보인 한 학생에게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이후 자리에 앉아 있도록 지도했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 당했다. 학생이 친구를 괴롭힌 데 대한 교육적 처분이었다. 그러나 학부모는 아이의 엉덩이에 땀띠가 생기고, 밤에 소변을 보는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교권 존중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스승의 날'이 다시 찾아왔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한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과 함께 교권 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 지쳐가고 있는 탓이다. '서이초 사건' 사건을 계기로 교권보호 5법이 마련됐지만, 정작 현장에선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권침해 연 4000건 '빙산의 일각'
14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지역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개최 건수는 총 4234건으로 집계됐다. 중학교가 2503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교 942건, 초등학교 704건, 특수학교 55건, 유치원 23건 등 순이었다. 서이초 사건이 발생했던 2023년 5050건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2020년 1197건, 2021년 2269건, 2022년 3035건과 비교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교보위란 교사가 교육활동 중 겪는 부당한 침해로부터 교권을 보호하고 회복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다. 교사가 피해 사안을 신고하면 조사가 이뤄지고 위원회가 소집돼 침해 여부, 학생 및 보호자 등에 대한 조치를 심의한다. 하지만 신고되지 않는 것까지 합하면 교권 침해 사례는 훨씬 많다는 게 교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실제 교권 침해는 교보위 개최 건수의 최소한 몇 배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배경은 교사 지위를 존중하는 사회적 가치와 정신이 약해졌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이라는 것이 본래 교사의 전문성과 지도력 아래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학생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들 역시 교육 현장에서 각종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초등교사 B씨는 "학부모에게 폭언을 들은 적도 많고 학부모가 수업 중에 갑자기 찾아온 적도 있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이 쏟아지기 때문에 매일 행동과 발언을 검열하며 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고등교사 C씨도 "학교를 대학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보고 기본적인 예의를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며 "학생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교사의 지도력이 약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물리적 충돌이나 성희롱·딥페이크 피해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목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학생이 이를 제지하는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한 고교생이 교사의 얼굴을 합성해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제작·판매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교직 절반 '사직 고민'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숨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침해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고자 '교권보호 5법'이 개정됐지만, 현장에선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교총이 지난 3월 전국 유·초·중·고 교사 6111명에게 '교권5법 시행으로 교권 보호에 긍정적 변화가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해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80%에 달했다.
교직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직을 고민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교사 82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교사 절반 이상(58.0%)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교권 침해 및 과도한 민원'(77.5%)이 1순위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교권 회복을 위해 교사를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함께 법·제도적 장치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교사를 존중하고 교사의 전문성에 의존하는 풍토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학부모가 교육의 수요자로, 교사는 공급자로 전락한 상황"이라며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교사를 존중하는 풍토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쌍철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교권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고,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 요구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학교 운영 방식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며 "학생 지도나 학부모 대응에 있어 교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함께 이뤄질 때 교권 회복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김형구 기자
welcome@fnnews.com 장유하 김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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