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나 칠레에서 들여온 와인을 싼값에 마시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수입자유화와 자유무역협정의 영향이 컸다. 막걸리와 소주만 마시던 한국인들이 와인을 처음 접한 것은 구한말 때이니 백년이 넘는다. 고문헌에 따르면 그 전에도 포도주를 마셨다고는 하지만, 제조법이 지금의 와인과 같은지는 알 길이 없다.
위스키 맛에 반해 산토리 위스키를 만든 일본인들은 서양의 와인 맛을 보고도 혹해 버렸다. 프랑스 와인을 수입해서 마시다 직접 와인 생산에 나섰고, 일본산 와인이 일제강점기 한국 땅에 들어왔다. '적옥(赤玉) 포도주' 등 일본산 와인 광고가 당시에 자주 신문지상에 등장했다. 와인을 마치 몸에 좋은 약처럼 선전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경북 포항에 '미쓰와(三輪) 포도원'을 세우고 와인을 우리 땅에서 생산했다는 사실을 전한 바 있다(본지 2023년 11월 30일자). 광복 후에도 이 농장에서 나온 포도로 와인을 계속 생산했는데 서양 와인과 비교하기는 어려운, 담금주 정도의 맛이었을 것이다. 진로에서도 소주 병에 담은 '진로 포도주'를 시판하고 있었는데, 소주에 포도 원액을 섞은 듯한, 달달하면서도 약간의 술맛이 나는 저급한 포도주였다.
최초의 정식 국산 와인은 1968년 5월에 나왔다. 옛 농어촌개발공사와 일본 산토리가 합작한 한국산토리가 충남 대덕 농장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생산한 것이다. 6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표 이영진씨가 일본에서 농학을 공부할 때부터 키웠던 꿈을 우여곡절 끝에 실현한 것이다. 와인 이름은 '산리'였다. 그러나 와인을 마시기에는 너무나 형편이 어려울 때였다. 재고는 쌓여갔고 한국산토리는 꿈을 펴기도 전에 운영난에 빠졌다. 경영난을 겪던 한국산토리를 해태주조가 사들여 1974년 시판한 와인이 '노블와인'이다.
그와는 별도로 정통 와인을 만들려고 한 사람이 박정희였다. 박 전 대통령은 농사짓기에 마땅하지 않는 땅에 포도를 심어 와인을 만들어 보라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동양맥주 회장이던 박두병에게 권했다. 동양맥주는 독일 라인 지역의 와인 제조용 포도 품종을 들여와 기후가 비슷한 경북 영일 청하면과 경남 밀양에 포도원을 조성했다. 공장은 두 지역에서 가까운 경북 경산에 지어 1977년 5월 국산 와인 1호인 마주앙 스페셜 화이트와 레드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서양식 와인 맛을 본 소비자의 반응은 "텁텁하다"였다. 그 전에 판매되던 엉터리 와인들의 달콤한 맛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입맛도 고급화되어 점점 마주앙의 인기가 높아졌다. 마주앙의 품질은 서양 와인 못지않았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마주앙을 '신비의 술'이라고 극찬하는 4단짜리 기사를 실었다. 동양맥주는 이를 소개하는 광고를 크게 냈다(조선일보 1978년 12월 26일자·사진). 1985년 독일 가이젠하임대학의 와인 학술세미나에서는 마주앙을 '동양의 신비'라고 극찬했다. 마주앙은 아시아 최초로 천주교의 미사주로 사용됐고, 청와대는 마주앙을 공식 만찬용 와인인 '스테이트 와인'으로 선택했다. 박 전 대통령도 자신이 권해서 만들어진 마주앙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1987년부터 외국산 와인 수입을 자유화하면서 마주앙 판매량은 급감했다. 국내 포도원들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마주앙은 이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돌아섰다. 마주앙 메독이나 마주앙 모젤, 마주앙 마고, 마주앙 리오하 등은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에서 생산해 국내로 들여와 판매한 와인이다. 해태와 진로도 OEM으로 유럽산 와인을 들여와 국내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외국 와인이 시장을 점령했지만, 국내산 포도를 사용한 마주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주앙을 인수한 롯데칠성음료가 경산 공장에서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지금도 매년 8월이 되면 경산에서는 '마주앙 미사주 포도 축복식'이 열린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이 시간 핫클릭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