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승만,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정치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에서 알 수 있듯 저자들은 경제(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라는 대니 로드닉 하버드대 교수의 독후감처럼 핵심은 '정치'임을 설파하고 있다. 저자들은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진 나라는 번영의 길로, 착취적 경제제도를 가진 나라는 빈곤의 길로 나아간 역사를 정리해 놓고 있다. 지리·문화 등이 아닌 사람이 만든 '제도'가 국가 발전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저자들의 분석대상으로 남북한이 곳곳에 등장한다. 단일민족으로서 동질적이었던 한반도는 2차 대전 후 두 동강이 났다. 북쪽은 사유재산권과 시장을 철폐하고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수립했고, 남한은 시장경제체제를 세웠다. 남한은 '경제 기적'을, 북한은 '경제 재앙'을 초래했다. 남북한의 운명을 가른 것은 1945년 두 사회가 수립된 경위가 달라서이지 문화 때문이 아니다. 북쪽은 소련의 입김에 휘둘리더니 나중에는 중국의 영향권에 휩쓸린 결과로, 남한은 미국과 연합국의 통제를 받은 결과로 서로 다른 경제체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경제체제를 수립한 정치적 선택이 '대낮같이 밝은 남한의 밤과 칠흑 같은 북한의 어둠'처럼 남북한 주민들의 운명을 엇갈리게 만든 것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북한의 경제제도는 1940년대 정권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이 시민에게 강요한 것이다. 남한이 북한과 완연히 다른 경제제도를 갖게 된 것은 사회구조를 결정한 이들의 이해관계와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한은 정치가 달랐다." 한반도에서 '이해갈등 조정의 정치'가 태동하기 전 있었던 '체제 선택의 정치'에서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가 핵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김일영, '건국과 부국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재조명'). 그런 면에서 바로 "문제는 정치야"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건국과 시장경제 체제 선택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라 피 흘려 싸워 얻은 것이라는 경구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당연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도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다. 선친이 가끔 하시던 말씀이 있다. 1945년 광복 당시 선친은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이었다. 일본인이 물러가고 엄혹한 일제의 감시가 없어지자 대한민국은 좌익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전체 학생 가운데 좌익이 아닌 학생은 선친을 포함, 단 2명이었다고 한다. 공공연한 폭력과 테러로 등하교 길은 물론 학교에서까지 호위 경찰이 있었다고 한다.
1925년 조선공산당이 결성되면서 한국인, 특히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1946년 9월 실시된 미군정 여론조사에 의하면 선호하는 정부 형태는 응답자 85%가 민주주의 대의제도를 원했지만 경제 형태는 자본주의 13%,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10%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1945년 8월 미군보다 먼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김일성을 앞세워 1946년 2월 '북조선림(임)시인민위원회'를 설립한다. 위원회였지만 토지 개혁법, 8시간 노동제, 주요 산업의 국유화령 제정 등을 보면 사실상 북한정부인 셈이었다. 이승만의 '정읍선언'은 이 때 나온 것이다. 1946년 6월 3일 전북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이라는 말로 '분단의 원흉'이라는 좌익 선전의 근거가 된 발언이다. 하지만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정권 수립으로 한반도 통일정부 수립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목격한 이승만의 결단이었다.
#농지개혁 등 사회주의적 정책 가미
제헌헌법은 미흡하나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제도를 채택하였지만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여 농지의 (강제)분배 등 사회주의적 성격의 제도를 가미하였다.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제헌헌법 제86조, 근로자의 '기업이익균점권'을 규정한 제헌헌법 제18조 제2항, "광물 등 지하자원의 국유화 및 전기·통신 등 공공산업의 국·공영화 원칙"을 정한 제헌헌법 85, 87조 등이 그것이다. '헌법의 순간'(박혁)에는 노동자의 경영참여권과 이익균점권 등을 둘러싼 오랜 토론과정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대한민국 체제는 공짜가 아니었다
일부 학자들은 당시 다수 국민이 원하던 사회주의를 배제한 것은 미국(군정)의 횡포였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국민정서, 남한에 비해 압도적인 북한의 경제력, 소련의 후원에 따라 일찌감치 정부조직을 갖춘 북한, 김구 등 남북합작 운동 세력. 이들을 감안했을 때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수립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1948년 2월 유엔소총회가 한반도의 '가능한 지역만의 선거'를 권고했을 때 좌익세력은 선거 거부, 관공서 습격, 방화, 테러, 철도 파괴 등 선거 방해 행위를 자행했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도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과 접목시켜 일으킨 사건이었다.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된 것은 안타깝지만 본질은 그런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체제 선택은 공짜가 아니었다. 이승만 등 대한민국 건국세력의 혜안과 미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제도를 채택한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최초의 선택이었다. 조선과 식민지 시대 전혀 알지 못하던 제도를 선택한 것은 선조들의 혜안이었다. 냉전이 시작되는 국제정세에 해박한 선각자 이승만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력의 참여와 공존, 설득과 토론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위대한 대한민국은 어렵게 뿌려진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김일영, '건국과 부국'; 인보길,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등 참조)
#포용적 정치제도로 이행
애쓰모글루 등은 이승만·박정희 시대가 상당 정도 '착취적 정치제도'였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경제체제만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정 부분 독재적 성격이 있는 정치제도가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포용적 정치제도로 이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과거 소련체제하의 경제발전이 지속되지 못한 것이나 북한체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도 착취적 정치제도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은 다행히 1980년대 이후 민주화를 통해 경제제도에 이어 정치제도를 포용적 제도로 바꾼 것이 지속 가능한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포용적 경제제도와 포용적 정치제도가 만들어져야 상호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견해이다. 2차 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등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한과의 비교도 큰 의미가 없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5달러에서 2024년 3만6624달러로 세계 6위 국가가 되었으며 일본을 앞질렀다. '포브스'지는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힘, 군사력, 국제적 동맹, 지도력 등 5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선정하는 2025년 세계 국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를 6위로 선정했다. 193개 유엔회원국 중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독일만이 우리 앞에 있을 뿐이다. 프랑스, 일본, 사우디, 이스라엘이 우리 뒤를 따르고 있다.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2023년 본보 주최 '대한민국 문화콘텐츠포럼' 기조연설자였던 샘 리처드 교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성공요인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함께 (일)하는 정신(spirit of working together)'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모두가 함께 하는 정신으로 성공시켰다는 것이다. 유일한 답은 아니겠지만 경청할만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평소 나의 지론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나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이면에 국민을 하나로 통합해낸 구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와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싶다"는 슬로건이 그것이다. 보릿고개에 허덕이던 백성들에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는 정확히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는 구호였다. 5천년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체념하던 국민의 마음에 불을 지른 외침은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를 상징한다. 1987년 민주화 대열에 모두가 동참할 수 있었던 데는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싶다'는 간명한 구호가 가슴을 건드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모두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정치캠페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정확히 반영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역동성을 발휘한 것이다.
#21세기 강대국의 비전(?)
대한민국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이 많다. 선진국이 되었는데 세계 최저의 저출생과 세계 최고의 (노인)자살률 등 국가소멸을 걱정할 정도에 이르렀다. 날이 갈수록 이념·지역·계층·노사·세대 갈등은 심각해지기만 한다. 선거가 있어도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정당과 후보들만 있을 뿐 국가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는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서울대 이근 교수의 '2030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는 하나의 활로가 될 만한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교수는 "강대국 대한민국은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단언한다. "국가 비전의 최종단계는 국내적 비전인 선진국, 국제적 비전인 강대국 두 개 뿐이다. 이미 선진국을 이룬 이제는 강대국 차례"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강대국이라는 비전은 솔직히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이 교수의 담대한 비전 제시와 성취방법론이 설득력 있는 건 사실이지만 조금 더 숙고해 보고 싶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건국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잇는 국가목표를 잃어버리고 잊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호가 극한 갈등에 휘말려 갈 바를 모르고 헤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민통합의 계기만 마련하면 우리 국민들은 '제2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한민국 강대국 시나리오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경쟁하는 정당과 후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는 '체제 선택의 정치'를 넘어 정치의 본령인 '이해 갈등 조정의 정치'로 이행해야 한다고.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국민의 가슴을 뛰게 하고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어떤 정권이든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한 선조들의 혜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서 결론도 똑같다. "문제는 정치야."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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