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8일 베트남 남부 짱방 마을에 미군이 네이팜탄을 투하하자 당시 9세였던 판 티 킴 푹(앞줄 왼쪽 두 번째)이 알몸으로 울부짖으며 도망치고 있다. 촬영자로 알려진 AP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는 이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파이낸셜뉴스] 베트남전 비극을 대변하는 사진인 ‘네이팜탄 소녀’의 촬영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세계보도사진(WPP)재단은 성명을 내고 ‘전쟁의 공포(The Terror of War)’ 사진에서 닉 우트의 이름 표기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사진은 지난 ’1973년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됐으나 조사 결과 우트가 아닌 다른 사진기자가 촬영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전쟁의 공포’라는 원제목보다 ‘네이팜탄 소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1972년 6월 8일 촬영됐으며, 북베트남군과 월남군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던 남부 짱방 지역의 한 마을에 네이팜탄이 투하되자 한 소녀가 공포에 질려 울부짖으며 알몸으로 무작정 내달리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AP통신이 보도한 이 사진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보여줬단 평가를 받으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 사진 중 하나가 됐다. 세계적으로 전쟁 반대 여론을 일으키는 데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시 AP통신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 지국 소속의 사진기자 닉 우트가 찍은 것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거머쥐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사진이 촬영되고 공개된 지 약 53년이 흐른 지난 1월부터 뒤늦게 원작자 논란이 불거졌다.
올해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더 스트링어(The Stringer·통신원)’에서 이 사진을 촬영한 인물이 우트가 아닌, NBC 소속 통신원인 응우옌 타인 응에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당일 우트를 태우고 문제의 현장에 갔던 응에가 이 사진을 찍어 20달러를 받고 AP통신에 팔았고, 당시 AP통신은 자사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응에가 아닌 우트의 이름으로 사진을 발행했다고 다큐멘터리는 주장한다.
당시 사이공 지국 사진 에디터였던 칼 로빈슨도 “나는 우트가 찍은 소녀의 옆 모습 사진을 추천했지만, 사진 부장 호르스트 파스가 프리랜서가 촬영한 정면 사진을 선택했다”며 “그가 ‘우리 기자 바이라인을 달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파스는 2012년 사망했다.
베트남전 참상이 담긴 '네이팜탄 소녀' 촬영자로 알려진 사진기자 닉 우트(오른쪽)와 사진 속 주인공인 판 티 킴 푹이 2023년 4월 미국 산호세에서 만나 당시 사진을 들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산호세=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에 AP 측은 자체 내부 조사를 통해 “이 사진을 닉 우트가 찍었을 가능성은 높지만, 응에가 촬영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반박했지만, 이 사진에 올해의 사진상을 수여했던 WPP는 다큐멘터리의 주장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WPP는 약 4개월간의 자체 조사 끝에 “당일 촬영 장소와 피사체와의 거리, 사용된 카메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닉 우트보다 응우옌 타인 응에가 더 적절한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WPP는 촬영자명만 변경할 뿐, 상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WPP는 “사진 자체는 논란이 없으며, 20세기 주요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 이 사진에 대한 우리의 수상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WPP는 실제 촬영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나오기 전까지는 작가 명시를 유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WPP는 “이 사진의 진짜 작가가 영원히 확인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 논란이 존재함에 따라 작가 명시를 유보한 상태”라며 “이 결정은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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