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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美 재정악화에 신용등급 강등, 바로 우리의 문제다

국가부채 계속 불어 1300조 육박
대선 후보들은 선심 공약 남발만

[fn사설] 美 재정악화에 신용등급 강등, 바로 우리의 문제다
지난 1월 20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란히 서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기축통화국 미국의 신용등급이 최고등급 아래로 강등됐다. 연방정부의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게 이유다. 나랏빚이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파장과 시사점을 던진다. 19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1.2% 하락해 장중 2600선이 무너졌다. 원·달러 환율은 1390원대에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로써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모두 미국을 최고등급 아래 단계로 내렸다. 108년 만에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한 무디스는 "현재 재정정책으로는 중장기적 의무지출, 연방 재정적자의 실질적 감축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방정부 부채는 9년 만에 10조달러나 불어 35조달러를 넘어섰다.

백악관은 "전임 바이든 정부가 늘린 지출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유야 어떻든 미국 국채 등 달러자산을 내다 파는 '셀 아메리카'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미국 내 부동산 대출금리 인상, 가계빚 부담 증가, 인플레이션, 증시 침체 등 금융·실물경제 전반에 미칠 도미노 후폭풍이 상당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악재다.

심각성을 따지자면 미국보다 우리가 더하다. 미국은 유사시 달러를 찍어 빚을 갚으면 된다. 전 세계 기업과 돈, 인재들이 밀려드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저성장에 빠져든 데다 급속한 고령화 등 구조적 이유로 정부 의무지출이 늘어날 일밖에 없다. 게다가 나랏빚의 양과 질 모두 나쁘다.

정부 재정적자는 올해도 100조원을 넘을 판이다. 나랏빚은 문재인 정부 때 400조원이나 늘었고, 올해 13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8.4%로, 지난 20년간 30%p 가까이 치솟았다. 15년 후엔 이 비율이 80%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말 한국의 정부부채비율(54.5%)이 비기축통화 11개 선진국 평균(54.3%)을 처음으로 넘어설 것이라고 봤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선 주자들은 앞다퉈 감세와 재정지출을 늘리겠다고 한다. 아동수당 확대(월 20만원 만 18세까지), 농어촌 기본소득, 소상공인 부채 탕감,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등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 200조원도 모자랄 것이다. 기초연금, 아동수당과 같은 의무지출과 재정적자를 단번에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세와 재정 확대는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지 둘이 같이 갈 수 없다. 나라재정을 생각한다면 수십조 수백조원의 재정이 들어가는 퍼주기식 정책만 내질러선 안 된다. 세수 확대 계획도 딱히 내놓지 못한 채 퍼주기식으로 재정을 뿌려서는 나랏빚이 빠르게 늘고 더 악화될 것이다. 정부재정이 경기를 되살리는 마중물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으로 써야 할 곳에 써야 하고, 구조개혁과 규제혁신 같은 비재정 수단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수출·내수 모두 나빠져 경제성장률이 1%대에서 0%대로, 심지어 마이너스로 떨어진다면 세수는 더 쪼그라들 것이다.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적자국채를 찍더라도 기초연금 등 의무성 지출을 메울 수 없을 것이다. 등급이 떨어지면 자금조달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적정한 수준의 재정준칙을 세워 정부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처럼 우리도 신용등급이 언제든 강등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