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이후 日 신설 반도체 공장 7곳 중 4곳, 미가동 양산 대기
파워반도체·메모리 수요 부진, AI 제외한 반도체 시황 회복 더뎌
르네사스·로옴·키옥시아 등 생산 시점 재조정
작년 日 반도체 점유율 7%, 1980년대 이후 최저
일본 반도체 기업인 르네사스의 로고. 뉴시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 국내 반도체 공장 가운데 건물 준공이 완료됐음에도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지 못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23년도 이후 완공된 반도체 공장 7곳 중,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4곳이 여전히 양산 단계에 돌입하지 못했다. 인공지능(AI)용을 제외한 일반 반도체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원 확대를 통해 반도체 투자를 유도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 일본의 세계 점유율은 2년 만에 다시 하락세로 전환되는 등 투자 성과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건물은 지었지만 '양산 대기'…日반도체 4곳 멈춰선 공장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주요 반도체 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3~2024년에 건설이 완료된 공장 7곳 중 양산을 개시한 곳은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이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나선 2020년 이후 일본 역시 반도체 산업 지원에 박차를 가해왔다. 일본 정부는 2022년부터 2029년까지 약 9조엔(약 86조4000억원) 규모의 국내 반도체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한 공장이 늘고 있다.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는 지난해 4월, 9년간 폐쇄됐던 야마나시현 가이시 소재 고후 공장을 재가동했지만 전기차(EV)용 파워반도체 수요가 둔화되며 양산 시점을 연기했다.
시바타 히데토시 르네사스 사장은 "극도로 불투명한 시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끝까지 신중한 시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옴은 2023년 미야자키현 구니토미정의 공장을 취득해 지난해 11월부터 시험 생산에 돌입했지만 양산 시점은 미정이다. 키옥시아홀딩스는 이와테현 기타카미시의 제2제조동에서 9월 가동을 목표로 한다. 7월에 건물이 완공되지만 메모리 수요 회복을 기다리며 생산 시점을 늦춘 것이다.
양산에 돌입한 기업들도 생산 확대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소니그룹은 나가사키현 이사하야시에 지난해 말까지 신공장을 완공하고 양산을 개시했다. 다만 추가 설비 투입은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할 방침이다. 이미지센서 생산 확대를 위한 조치였지만 최근 애플 아이폰 판매가 부진하고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현지 부품 조달로 전환하면서 수요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일본 도쿄 소재 소니 본사. 뉴시스
日반도체 점유율 7%로 후퇴, AI반도체도 글로벌 열세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1988년 한때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했으나 한국과 대만 기업들과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쇠퇴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4년 일본의 반도체 판매 점유율은 7.1%로 전년보다 1.7%p 하락했다. 198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기술 격차도 뚜렷하다. 최신 반도체는 회로선폭 2나노(10억분의 1m) 수준까지 진입했지만 일본 내 생산 능력은 12나노에 머무른다. 일본 기업만 보면 생산 가능한 수준은 40나노에 불과하다. 특히 AI 반도체 분야에서는 해외 기업에 비해 설계·개발·제조 모두 뒤처졌으며 생성형 AI 붐에도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
AI 이외의 반도체 수요 둔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PC와 스마트폰 판매가 부진하면서 전세계 반도체 수요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공장 가동률은 60~70% 수준에 그쳐 통상적인 정상 운영 기준인 80~90%에 크게 못 미친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도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대미 반도체 수출 비중은 3% 수준에 불과하지만 관세 인상으로 최종제품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고, 이로 인해 공장 가동 지연이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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