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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EU 이혼 5년만에 재결합을 위한 발걸음 시작

안보·방위, 식품, 조업권, 청년 상호 취업 등 관계 강화를 규정한 파트너십 협정 도출

영국과 EU 이혼 5년만에 재결합을 위한 발걸음 시작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이 19일 영국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열린 영국-EU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장으로 걸어가면서 협상 타결에 만족한 듯 서로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을 통한 칼 코트/풀

[파이낸셜뉴스]브렉시트(EU 탈퇴)로 이혼하고 나갔던 영국이 EU와 동거를 모색하면서 양측이 협력 강화 협정을 도출해 냈다. 재결합을 위한 발걸음이 5년만에 시작된 것이다.

영국과 EU는 19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안보·방위, 식품, 조업권, 젊은이들의 상호 취업 등 이주에 걸친 관계 강화를 규정한 파트너쉽 협정에 합의했다.

관계 재설정을 위한 첫 정상회담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이 참여했다. 해당 정상회담은 앞으로 연례화될 에정이다.

스타머 총리는 첫 협상에서 양측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지만, 영국이 레드라인은 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재가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조심스런 언급이다.

EU, 240조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에 영국의 동참을 허용


이번 협정으로 EU는 1500억 유로(약 240조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에 영국의 동참을 허용했다. 농축산·식품의 경우 다수 품목의 검역을 면제하는 등 검역·통관을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브렉시트 이후 복잡해진 서류 작업 등 일련의 비관세 장벽을 점진적으로 철폐해 나갈 생각이다.

브렉시트 이후 비자 제한은 문화적 교류뿐만 아니라 은행가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의 국경을 넘는 경제 활동에도 지장을 주었다. 브렉시트 후 복잡해진 절차로 급감했던 영국산 식품류의 EU 수출이 다시 활성화되게 됐다. 스타머 총리는 기자 회견에서 "EU시장 수출에 드는 비용과 번잡한 수속이 대폭 삭감된다"라고 밝혔다.

양측은 내년 만료되는 어업 협정을 2038년까지 연장, 상호 조업권을 12년 더 유지하기로 했다. 종래 합의는 2026년 기한이 끝나기 때문에, 프랑스 등이 연장을 요구해 왔다.

양측은 영국의 EU 역내 거래 플랫폼을 비롯한 전력 시장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배출량 거래 제도(ETS) 제휴에도 합의했다. 탄소 배출량 거래 시장 연계 계획에 따라 영국 기업은 내년 도입 예정인 EU 탄소세를 면하게 될 전망이다.

BBC 등은 영국이 조업권을 양보하고 농산물·식품 수출 절차 간소화를 받아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합의로 영국에 2040년까지 90억 파운드(16조7000억원) 가까운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워킹 홀리데이 제도 및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도입 준비


한편 30세 이하 젊은이들의 교류 촉진을 위한 워킹홀리데이 제도도 도입한다. EU는 회원국 젊은이가 영국에서 취학이나 취업이 쉽도록 하기 위해 목적을 불문한 수년 동안의 체류 허가를 요구해 왔다.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와 운용하고 있는 같은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반면 영국은 EU 학생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참여를 검토한다. 영국인이 EU 국경에서 전자 자동 입국 심사대(e-gate)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영국은 2020년 브렉시트를 발효한 지 5년 만에 EU와의 재결합을 향한 중대한 변곡점에 서게 됐다. 2024년 친 EU성향의 노동당의 스타머 정권이 탄생하면서 양측의 협력이 활발해졌고, 정상회의도 그 연장 위에서 이뤄졌다. 주둔군 감축 등 유럽 방위에 발을 빼기 시작한 트럼프 미 정부의 행동도 영국·EU의 관계 회복을 부추겼다.

이탈을 주도한 영국 보수당은 "영국이 '룰 테이커'(규제의 수용자)가 되어 버린다"며 비판했다.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는 "아마추어같이 시작해서 완전한 배신으로 끝났다"며 "이 끔찍한 합의를 뒤집겠다"고 경고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는 "비굴한 항복"이라며 "영국 어업의 종말"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은 노동당 정부의 관계 강화 시도는 EU에 굴복하는 것이자, 브렉시트를 결정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공세를 이어왔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영국 내 여론은 EU와 관계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지난 1월 유고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2%가 브렉시트가 실패에 가까웠다고 평가했고 11%만 성공에 가깝다고 답했다. EU나 단일시장 재가입 없이 더 근접한 관계를 원하는 응답자는 64%였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