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학교폭력 피해 중
사이버폭력 17%...두번째로 높아
사이버성폭력도 3년새 4.8배↑
가해자 81.4% "아무 제재 받지 않아"
전문가들 "플랫폼 기업 사회적 책임
강화하고 규제조치 신설해야"
(출처=연합뉴스)
22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 본부 앞에서 재단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초등학교 5학년 A군(12)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인 것처럼 합성한 사진과 부모님 욕설이 담긴 게시글을 목격했다. A군은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증거를 모아 재신청한 뒤에야 삭제가 이뤄졌지만 처리가 지연된 탓에 이 게시글이 다른 플랫폼까지 유포됐다. A군은 허위 사실이 유포되면서 우울감과 또래 관계 단절을 겪었다. 이후에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다.
또래의 인격을 짓밟아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건강 악화를 초래하는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폭력의 진원지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1020세대가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버 공간으로 바뀌고 있지만 관련 제재는 미흡하다. 플랫폼 기업의 책임 있는 조치와 입법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폭력 피해자 절반 "자살충동 有"
22일 푸른나무재단이 발표한 '2025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학교폭력 가운데 사이버폭력은 전년 대비 1.9%포인트(p) 증가한 17%로 집계됐다. 언어폭력(28%)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사이버폭력 중 하나인 사이버성폭력은 13.3%로 3년 새 4.8배 늘었다. 사이버성폭력 피해 가운데 딥페이크(허위 영상물)가 악용된 사례는 24.7%에 달했다. 기술 기반 신종 성폭력이 실제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조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전국 시·도의 초·중·고등학생 1만2002명과 보호자 5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사이버폭력 피해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도 심각했다. 이들의 47.5%는 자살·자해 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피해 학생이 겪은 비중(38%)보다 높았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 학생의 자살·자해 충동 경험률(65.6%)도 전체 성폭력 피해 학생(44.8%)을 웃돌았다. 김미정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장은 "처음 올라온 게시글이 삭제됐다 해도 여러 플랫폼에 끝없이 반복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피해 학생 입장에서는 평생의 고통"이라고 짚었다. 이어 "심각한 2차 피해가 장기화될 수 있음에도 신체적 폭력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제대로 된 보호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기업 사회적 책임 부각해야"
반면 플랫폼이 사이버폭력 가해 학생을 제재하는 비중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81.4%가 플랫폼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 대부분이 구글과 메타(옛 페이스북), 틱톡 등 글로벌 기업이어서 제지가 어려운 것이 원인이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는 "카카오톡 등 국내 기업은 경찰에서 수사 공문을 발송하면 익명의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다. 반면 해외 플랫폼은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수민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도 "해외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사업하려면 서비스 내에 실명 사용 기능을 넣도록 해 가해자를 쉽게 특정할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가 커지자 메타는 14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팔로우하는 사용자들끼리만 게시물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10대 계정'을 도입했다. 자녀가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부모가 확인도 가능하다. 카카오톡은 보호자가 오픈채팅 이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 적용했다. 노 변호사는 "일반채팅에도 관련 기능을 도입해 사이버폭력을 조기에 감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이버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관련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단 학부모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학부모의 89.4%와 96%가 각각 '사이버폭력에 대한 플랫폼 기업 책무 이행'과 '청소년 SNS 사용 규제 강화'에 동의했다. 99%는 '딥페이크 등 신종 사이버성폭력 대응 대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재단 측은 21대 대선후보들에게 △'사이버폭력 대응 공시제' 의무화 △사이버폭력 발생시 플랫폼의 삭제 및 제재 의무 법적 근거 마련 △국가 차원의 인공지능(AI) 사이버폭력 예측 모형 개발 등을 제안했다. 사이버폭력 대응 공시제는 플랫폼 사업자가 사이버폭력 대응 실적(접수 건수, 처리 결과, 조치 유형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박길성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은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플랫폼 기업과 정부, 관련 단체가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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