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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지역 주민 송전선 반대, AI강국도 가로막는다

동해안~신가평 완공 1년 더 지연
하남시는 아트센터 지어달라 요구

[fn사설] 지역 주민 송전선 반대, AI강국도 가로막는다
하남시 동서울 변전소 전경.사진=한국전력 제공
산업통상자원부가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HVDC) 송전선로 완공 시점을 기존 2026년 6월에서 2027년 6월로 1년 연장한다고 지난 23일 고시했다. 이 사업은 신한울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다. 송전선로 총길이는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230㎞다. 당초 2019년 12월 준공이 목표였지만 구간마다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중단이 밥 먹듯 거듭됐다. 최근에서야 전 구간 주민 합의가 최종 완료됐지만 누적된 공사지연으로 완공 시기는 결국 1년 더 늦춰진 것이다.

대규모 전력공급이 인공지능(AI)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언제까지 이런 굼뜬 행보여야 하는지 속이 탄다. 동해안~신가평 HVDC가 늦게나마 완공된다 해도 온전히 전력을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가 막힌다. 동해안~신가평 HVDC에 이어 양평∼동서울 HVDC 사업이 완료돼야 수도권 전력 공급망이 완성된다. 이 사업 마지막 퍼즐을 푸는 곳이 하남시 동서울변전소인데, 증설 공사와 관련해 아직도 주민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남시 주민들은 전자파·소음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동서울변전소 증설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과학적 검증을 통해 전자파·소음 수치가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는데도 요지부동이다. 하남시는 변전소 증설 불허 처분은 부당하다는 경기도 행정심판을 1년 넘게 뭉개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엔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와 같은 획기적인 주민 보상책을 요구했다고 한다. 아트센터 건설에는 4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 전국에 변전소가 900여개나 되는데 증설 때마다 이런 예산을 한전이 어떻게 감당하나.

제동이 걸린 송전탑은 하남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요 송전선로 31곳 중 26곳의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 전력망이 부족해 발전소를 건설해 놓고도 조달을 못하는 전력량이 동해안 지역은 최대 7GW, 서해안 지역은 최대 3.2GW에 이른다. 이 낭비되는 전력 규모는 여름철 서울시의 최대 전력수요와 맞먹고, 국내 반도체 생산공장 전기 사용량의 2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전력망 확충이 늦어지면 피해는 전체 국민에게 돌아간다. 폭염과 이상기후에 전력 소비는 나날이 증가한다. 원활히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기료 상승을 막을 방법이 없다. 안정적 전력 시스템이 구축돼야 AI 산업에 탄력이 붙을 것인데, 지역 이기주의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어 순식간에 낙오된다면 누가 책임질 텐가.

세계 주요국들은 앞다퉈 전력망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수요 급증을 고려해 전력망 규칙을 대폭 개선했다. 일본도 '2050 국가그리드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는 등 전력망 확충에 총력을 쏟고 있다.
우리는 입만 열면 AI 3대 강국을 외치면서 전력망 확충엔 뒷짐만 지고 있다. 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중앙정부 차원의 송전탑 중재 해법이 필요하다. 무책임한 탈원전으로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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