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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 육사 연설과 ‘킨들버거 함정 2.0’ [fn기고]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트럼프 미 대통령, 미국 육사 졸업식서 국제안보 공공재 제공 거부 연설
 -패권국 美 고립주의 정책, 국제적 대공황 유발한 '킨들버거 함정' 촉발 우려
 -킨들버거 함정 1.0은 패권국의 제 역할 거부→경제 대공황→2차 세계대전
 -킨들버거 함정 2.0은 패권국의 역할 방관→바로 '안보적 도전' 직결, 차이
 -킨들버거 함정 2.0은 80여년 패권 견지하다 돌연 美 역할 거부, 파급력 커
 -중국, 패권도전 매우 강한 지점서 조성…과거와 다른 국제안보 기제 요동쳐
 -동맹관리, 한층 난해한 환경 의미…자강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 시사
 -트럼프 연설 동맹 위협시 대응 메시지 포함, 차별화된 결속력 유지 의도도
 -자강 역량 높이면 대미 레버리지 자산 다층화…동맹 결속력 높일 수 있어
 -'킨들버거 함정 2.0' 도전과제를 진화형 안보정책 설계로 잘 풀어나가야

[파이낸셜뉴스]
트럼프의 미 육사 연설과 ‘킨들버거 함정 2.0’ [fn기고]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패권국이 제 역할을 거부하면 국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찰스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는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고립주의 정책을 통해서 글로벌 공공재 제공을 거부하면서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국제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패권국의 제 역할 거부가 잉태하는 국제적 위기라는 개념을 도출하면서 조셉 나이(Joseph S. Nye)는 이를 ‘킨들버거 함정’으로 규정했다.

지난 2025년 5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을 통해 국제안보 공공재 제공 거부를 명확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졸업생을 향해 ‘황금기’ 미국의 첫 기수라고 치켜세우며 달라진 ‘MAGA 미국’의 모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모든 국가를 방어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점을 강변했다. MAGA 행정부에서 미군은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의 본토를 지켜내는 것이 최우선 임무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고 한편으로는 국제안보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의미도 내포한 것이기도 했다.

킨들버거 함정이 당시 신흥 패권국 미국의 역할 거부에 대한 위험성에 방점을 둔 것이라면 현재 미국의 패권 공공재 거부는 ‘킨들버거 함정 시즌 2.0’으로 규정할 수 있다. ‘킨들버거 함정 1.0’과 ‘킨들버거 함정 2.0’은 유사하면서도 차이점도 적지 않다. 첫째, 함정이 만들어 낸 위기의 유형이 다르다. 킨들버거 함정 1.0은 패권국의 제 역할 거부가 경제 대공황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경제전선 차원의 함정에 주목한 것이었다. 물론 경제 대공황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도 있었지만, 직접적인 연계성은 경제전선이었다. 하지만 킨들버거 함정 2.0은 국제안보에 대한 미국의 역할에 거리를 둔 것이므로 이는 안보전선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역학이다. 따라서 킨들버거 함정 2.0의 국제적 위기는 안보적 도전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특히 이로 인한 미국의 안보 공공재 미제공은 현상변경국가들에 오판의 여지를 높이는 요소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제안보 약화의 소지가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이 공격받을 경우”에는 대응에 나서겠다는 언급도 부연했지만 이는 전쟁 이후의 관여라는 차원에서 전쟁 발발을 차단하는 억제력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둘째, 패권국의 위치가 다르다. 킨들버거 함정 1.0이 신흥 패권국 미국의 역할 거부라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면 킨들버거 함정 2.0은 이미 80여 년 이상 강건한 패권적 위상을 견지해 온 미국의 역할 거부라는 현실에 주목한 개념이다. 신흥 패권국의 역할 거부와 기존의 공고한 패권국의 역할 거부는 국제무대에 미치는 파급력의 강도가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사안을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다.

킨들버거 함정 2.0은 기존 패권국이 안보 공공재 제공을 거부하고 패권도전국 중국이 그 역할을 메우려는 의도가 매우 강한 지점에서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국제안보 기제를 요동치게 하는 사안이다.
이는 동맹관리가 한층 난해한 환경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자강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에 대한 위협시 이에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도 연설에 포함시킨 것은 유용한 동맹의 경우에는 차별화된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도를 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강 역량이 높아져 대미 레버리지 자산도 다층화되면 동맹 결속력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킨들버거 함정 2.0이라는 도전과제를 진화형 안보정책 설계로 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