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동래학원 오정석 이사장. 동래학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격동의 시기, 부산 좌천동에서 ‘사립일신여학교’로 처음 문을 연 학교법인 동래학원이 오는 30일 개교 130주년을 맞는다. 초가삼간에서 시작해 130년 나이를 먹는 동안 동래여고, 부산예고, 동래여중, 부산예중, 동래초등, 동래초등 부속 유치원까지 6개 교육기관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명문사학으로 거듭났다.
130년 사학의 역사는 한강 이남에서 동래학원이 처음이다. 동래학원이 일신여학교를 개교하던 1895년은 갑오개혁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로부터 130년간 참교육 정신을 면면히 지켜온 이 사학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격동의 역사이자, 교육계의 자부심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동래학원은 오는 30일 오전 11시 부산 금정구 부곡동 동래학원 내 우창회관에서 130주년 개교기념식과 축하공연을 연다. 130주년을 맞아 전국 중학생 미술실기대회, 전시회, 과학축제, 국악연주회, 무용경연대회, 합창경연대회, 음악콩쿠르 등 다양한 행사도 연중 열린다.
학교법인 동래학원 오정석 이사장(83)은 26일 부산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래학원은 ‘민족의 앞날을 밝히려면 여성이 깨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태동했다”며 “애국·애족·애향을 건학이념으로 삼아 인간교육·창의교육·덕성교육을 실천하며 유구한 세월동안 자유로운 인재를 길러왔다. 이제, 130년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학부모가 믿고 맡기는 학교,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평생의 소박한 꿈”이라며 “지식과 인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오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역사적인 130주년을 축하드린다. 학교법인 동래학원의 바탕 정신은.
▲동래학원은 개항 이후 근대화를 지향하는 개화운동과 함께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1895년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일신여학교’로 개교했다. 일신여학교는 우리나라 근대 여성교육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3·1운동을 계기로 항일 구국운동을 펼쳤다. ‘여성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 아래 세워진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의 산실로 활약하며 ‘조선의 정신’을 지켜냈다.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나라를 일으키는 교육의 불씨이자 지역의 등불이었다고 자부한다.
― 동래학원은 수차례 이전을 거쳐 지금의 금정구 부곡동에 터를 잡았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좌천동 시대 30년만인 1925년 동래구 복천동으로 옮겼다. ‘동래일신여학교’ 시대를 연 것이다. 일신여학교는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인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를 계기로 1940년 애국·애족·애향을 건학이념으로 동래학원을 설립했다. 교명도 ‘동래고등여학교’로 바꿔 민족교육을 펼쳤다. 8·15 광복, 6·25, 4·19 같은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동래일신여학교를 동래여고와 동래여중으로 분리하고, 동래초등학교와 부속유치원을 개교했다. 또, 부산예술 발전을 위해 부산예고와 부산예중을 설립하면서 마침내 6개 학교가 한 구내에 자리, 유치원·초·중·고를 아우르는 유수의 명문 사립학원 체제를 완성했다.
― 학교법인 동래학원만의 교육 특징을 꼽는다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6개 교육기관을 하나의 교육철학 아래 통합적·유기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들 기관은 각각 독립된 교육 목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래학원이라는 큰 나무의 뿌리와 줄기, 가지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이는 단순한 학교 운영을 넘어, 한 세기를 뛰어넘는 교육 사명을 체계적으로 실현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전 교육 단계에 걸쳐 인성, 학력, 창의성, 예술성, 공동체성을 단계별로 함양할 수 있도록 각 학교 간 연계 시스템과 교육 비전을 일관되게 구현해왔다는 점이 동래학원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이라 자부한다.
― 자신만의 교육철학이 있다면.
▲130년 전, 한 사람이 켠 교육의 등불이 지금은 수만 명의 삶을 밝혔다. 저는 그 등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배우고 있다. 굳이 밝히자면 ‘130년을 지켜온 뿌리, 내일을 밝히는 씨앗’이 저의 교육철학이다.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를 밝히며, 세대를 잇는 사명이다. 동래학원이 지켜온 가치는 단순한 성적 중심의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사회에 이바지하며, 예술과 학문을 아우르는 인재 양성이다.
학교법인 동래학원 변천 ①최초의 초가삼간 일신여학교 ②1925년 이전 건립한 부산 복천동 교사 ③지금의 부산 부곡동 일원 학교법인 동래학원 전경. 동래학원 제공
오 이사장은 1943년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문은 1895년 사립일신여학교를 설립하며 부산지역에 여성 교육과 계몽운동의 불을 지핀 교육 명문가다. 조부 오태환 선생과 부친 오재진 박사 모두 교육을 통한 민족과 사회의 성장을 삶의 사명으로 삼아왔다.
오 이사장은 동래고와 경상대 농업교육과를 졸업하고, 청년 시절부터 ‘사람을 키우는 교육’의 길을 걸어왔다.
1979년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교육 인프라 부족과 재정난을 안고 있던 학교법인 동래학원의 재도약을 이끌었다. 1987년 1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자체 조달해 동래여중·동래여고·동래초등학교를 지금의 부곡동 일원으로 이전하며 지역 내 대표 교육클러스터를 만들었다. 또, 부산예술고(1986), 부산예술중(1999)을 설립, 중·고·대 예술 인재 사다리 체계를 완성했다.
그는 일신여학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차정 여사의 숭모회 회장도 맡고 있다. 동래구 칠산동 박차정 여사의 생가복원, 학교 안 동상 건립 등을 통해 박 여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지난 2월에는 ‘2025 대한민국 교육대상’ 교육인물 부분 수상자로 뽑혀 상을 받았다. 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부산 최초로 예술고를 설립하고, 인문·예술계 교육을 두루 선도해 온 공로를 높이 평가받은 결과다.
오 이사장은 “130년은 우연히 만들어진 역사가 아니라 수많은 교사와 학부모, 학생과 지역사회가 함께 쌓아 올린 공동의 성취”라며 “동래학원은 이제 그 소중한 자산 위에 다음 100년을 새롭게 준비, 지성의 든든한 뿌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paksunbi@fnnews.com 박재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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