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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2025년 아시아 네 마리 용의 희비

[강남시선] 2025년 아시아 네 마리 용의 희비
이병철 국제부장
2010년 말 기획 취재차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로 희망을 잃은 청년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청년들, 동네 PC방에서 먹고 자며 지내는 청년들을 만났고 일본 정부 관계자와 시민단체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취재차 만난 일본 경제 전문가의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2010년은 일본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일본이 침몰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0년 일본이 충격을 받은 사건은 무엇인가. 우선 1960년대 후반부터 지켜왔던 세계 경제대국 2위 자리를 중국에 빼앗겼다. 201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8790억달러로 일본의 5조4740억달러를 앞질렀다. 일본인들을 더 충격에 빠뜨린 것은 삼성전자의 약진이었다. 그즈음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이 일본 대표 전자기업의 총매출을 앞섰다. 2010년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은 154조원이었다. 일본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전자업체들이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에 잡히면서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이런 사실을 자세히 다루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10년쯤 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한국의 성공 방정식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고 우리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다. 당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의 사례를 예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시 한국의 교육에 대해 언급한 발언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최고의 교육을 요구하며 이는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 중 하나" "한국에서는 교사들이 의사나 엔지니어와 같은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교육을 최고의 직업으로 존경한다." 지난 2011년 국정연설에서는 "우리의 인프라는 한때 세계 최고였지만, 이제는 뒤처졌다"며 "한국의 가정은 이제 우리보다 더 나은 인터넷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외에 원자력발전, 고속철도 등도 거론했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 중 단연코 한국이 가장 앞서 나갔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1960년대부터 1980년까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끈 나라로 불렸다. 높은 교육열을 기반으로 한 국가 주도 인재양성 및 경제개발 등이 공통된 특징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용어이지만 네마리 용 중 경제적으로 가장 성장한 국가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세계 10대 무역강국으로 우뚝 섰으며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전 산업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췄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경제 상황만 놓고 보면 '아! 옛날이여'라는 한탄만 나온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대 성장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도 가라앉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가경쟁력 자체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의 약진을 보면 더욱 그렇다. 대만은 네마리 용 중 하나였지만 중국의 약진으로 세계 경제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AI)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국가 중 하나로 거듭났다. 올해 대만 최대 IT 박람회인 '컴퓨텍스 2025'의 위상만 봐도 그렇다. 1981년 대만 컴퓨터 부품 전시회로 출발한 컴퓨텍스는 AI 바람을 타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등 전 세계 34개국 1400여개 기업이 참여했다. 아시아 최대 기술전시회로 거듭났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AI 패권'의 핵심은 대만에 있다고 강조했다. 영 리우 폭스콘 CEO가 젠슨 황을 '리더 오브 팀 타이완'(Leader of Team Taiwan)이라고 소개하자 젠슨 황은 "고, 팀 타이완!"(Go, Team Taiwan!)이라고 화답했다.


이제 며칠 있으며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이번에는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팀 코리아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2010년 일본이 자존심을 잃었던 그 순간, 우리는 정반대로 자신감을 얻었듯이 오늘의 위기도 분명히 새로운 도약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prid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