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덮치거나 건물로 돌진해
사상자 잇따라 일상 속 위협 부각
"운전자는 고령"에 대부분 포커스
전문가 "과도하게 일반화·혐오"
오조작 방지·긴급제동 장치 등
사고 예방 중심 해결책 찾아야
#. 지난 23일 차량 돌진 사고가 발생했던 서울 강동구 길동 복조리시장. "어서 오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손님을 모으기 위한 상인들의 외침으로 가득했다. 직접 피해를 입은 청과물 가게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러나 사고가 남기고 간 두려움마저 숨기는 건 역부족이었다. 상인들은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리면 '흠칫' 놀라며, 식은땀을 흘렸다. 한 상인은 "당시 가게에 있던 가족이 다쳤을까 봐 소식만 듣고도 놀라서 몸이 안 좋았는데, 사람이 쓰러지고 야채들이 망가져 있는 걸 보니 혼비백산했다. 40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도심에서 '급발진 의심 교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일상 속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운전자가 고령이라는 점을 근거로 운전 금지 등 극단적 주장도 쏟아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 전체를 매도하는 '확증편향'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고령자들의 면허 기준 및 규제 강화 등 제도 개선은 시급하다고 전제했다.
■"고령 불안" vs "일반화"
26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0~40대의 젊은 시민들은 대체로 고령자들의 운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지난해 69세 운전자 B씨가 횡단보도 돌진 사고를 일으켰던 경기 분당 미금역 인근에 거주 중인 이진아씨(41)는 "역 근처에 어린이들을 포함한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데 걱정이 된다"며 "70대가 넘어가면 아무래도 대처 능력이 떨어지니 정기적인 적성 검사를 거쳐 면허 박탈을 고려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스무 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했다는 조모씨(27)도 "최근 급발진 사고를 봤을 때 고령 운전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시험을 진행해 건강상 운전이 어려울 경우 면허를 반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온라인상에서도 '60대 이상은 운전하면 안 될 나이' '급발진은 왜 대부분 나이 든 사람이냐' '만 70세부터 운전 절대 금지해야 한다' 등 고령 운전자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다만 실제 통계는 이런 우려와 다소 차이가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안태준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접수된 급발진 의심 신고 456건 중 60대 이상은 171건(43.2%)으로 50대 이하(225건·56.8%)보다 오히려 적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영향으로 사회 불안이 가중되면서 공격성이 소수 집단으로 향하기 쉬운 구조"라며 "개인의 취약성이 아닌 전체 고령층에 대한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혐오 아닌 예방 초점"
60대 이상 운전자들도 '성급한 일반화' 등의 취지로 항변한다. 택시 운전 경력 36년인 임모씨(81)는 "차량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가 청년이면 나이가 나오지 않는데, 고령자가 운전해 사고가 나면 나이에만 초점을 맞춰 얘기하는 게 속상하다"며 "지금도 65세 이상 택시 운전자는 1년에 한 번 자격 검사를 받아야 하고, 고령자들은 면허를 갱신할 때 치매 검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8년 간 화물차 운전, 15년 간 택시 운전을 이어 오고 있는 민모씨(57)도 "나이가 아닌 개인의 운전 역량 차이"라며 "차체 결함이나 급발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사고를 낸 '고령' 운전자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에 대한 과도한 혐오나 일반화가 아닌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고령자의 급발진을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자각, 나 또한 '잠재적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혐오가 확산되는 상황"이라며 "객관적 통계 대신 '고령자는 운전을 못하고 사고 위험이 높을 것'이라는 본인의 확증편향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도 "전 국민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 인구인 상황에서 고령자들의 운전을 막는다는 단편적인 결론으로는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며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의무화 △긴급제동장치·차선이탈경보장치 옵션 분리 및 보조금 지급 △조건부 운전면허제 본격 논의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현재 긴급제동장치 등의 옵션이 풀옵션으로 묶여 있어 가격이 높은 점을 개선해야 하고, 국토부 정책과에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 야간·고속도로 운전 등은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제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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