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럼프 관세 전쟁 이후 '최초판매규정' 적용 문의 증가
美 수입품 관세 매길 때 공장 도매가 기준으로 과세 가격 낮출 수 있어
1988년부터 시행됐지만 복잡한 조건과 절차 때문에 이용 빈도 낮아
트럼프 관세 전쟁으로 다시 인기, 마진 높은 제품 일수록 유리
최초판매규정 이용하려고 공급망 변경까지 검토
2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항구에서 컨테이너선이 정박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올해 관세 장벽으로 수입 문턱을 높이면서 이를 피해가는 합법적인 '샛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약 40년 전 제정된 미국 관세 규정을 이용하면 다소 번거롭지만 관세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보고, 공급망 조정에 나섰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26일(현지시간)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최근 미국 세관에서 수입품에 적용하는 '최초판매규정(First sale rule)'이 합법적인 절세 방식으로 인기라고 전했다. 해당 규정은 미국 관세법에 의거해 1988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수입업자가 과세 가격을 신고할 때, 중간 유통 마진을 제외한 최초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예를 들면 중국의 공장 주인이 홍콩 유통업자에게 자신이 만든 티셔츠 1장을 5달러에 판매하고, 홍콩 유통업자가 이를 미국 소매업자에게 10달러에 판매하며, 미국 소비자가 이를 최종적으로 40달러에 사는 경우 미국 소매업자는 수입 가격인 10달러를 기준으로 관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업자는 최초판매규정을 이용하면 최초 거래 가격인 5달러를 기준으로 관세를 내면 된다.
미국의 무역 전문 법무법인 밀러앤드슈발리에(M&C)의 브라이언 글라이허 선임 변호사는 "해당 규정은 생긴 지 오래됐지만 모두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회계컨설팅 기업 모스 애덤스의 시드 파루티 파트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였던 2018년에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시작한 시점을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 1기 정부가 (중국에) 25% 관세를 적용했을 때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면서 "지금 새로운 관세가 등장하면서 최초판매규정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규정은 관세를 크게 아낄 수 있는 통로지만 까다로운 조건과 서류 작업 때문에 자주 쓰이지 않았다. M&C에 따르면 2009년 미국 수입품 가운데 해당 규정을 이용한 사례는 2.4%에 불과했다. 최초판매규정을 적용받는 수입품은 해외 생산자와 중간 판매자를 포함하여 최소 2건의 독립된 판매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관세 신고자는 독립된 판매 과정이 서로 관련이 없는 업자들 간에 이뤄졌다는 점, 해당 거래들이 미국 수출을 위해 진행되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아울러 최초 거래 가격을 입증할 수 있는 문서도 필요하다.
CNBC는 미국에 제품을 수입하는 업자가 수입품의 최초 거래 가격을 알아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생산자와 유통업자 모두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가격 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정부 이후 중국 닝보 지역에서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들을 상대로 자문 활동을 했다고 알려진 기업 컨설턴트 리치 테일러는 CNBC에 "관세를 줄이려면 공급망에 있는 모든 당사자들이 서로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최초판매규정을 늦게 이용할수록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CNBC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최초판매규정을 이용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고가의 소비재나 명품처럼 제조 원가와 소매가 차이가 큰 제품들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몽클레르는 지난달 16일 실적 발표에서 최초판매규정을 이용에 큰 이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스위스 제약기업 쿠로스바이오사이언스는 이달 13일 실적 발표에서 최초판매규정을 이용하기 위해 공급망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알렸다. 미국 바베큐 장비 제조업체 트레이거와 미국 온라인 제조 플랫폼 픽티브 모두 올해 1·4분기 실적 발표에서 최초판매규정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CNBC는 최초판매규정이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정책 및 제조업 부흥 전략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미국 백악관은 CNBC의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신화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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