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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휘말린 기업, 수년간 비용 부담에 이미지 추락 '주홍글씨' [집단소송, 권리인가 권력인가(1)]

개인들 참여 쉽고 비용은 분산돼
이슈 때마다 "소송 갑시다" 확산
판결 상관없이 기업 평판 나빠져
中企·스타트업은 도산 내몰리기도

소송 휘말린 기업, 수년간 비용 부담에 이미지 추락 '주홍글씨' [집단소송, 권리인가 권력인가(1)]
집단소송 확산에 기업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십수년 전부터 시작된 집단소송이 최근 들어선 소송건수가 늘고 규모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소송이 실제 손해배상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기업 입장에선 소송 대응에 따른 비용부담과 평판 리스크를 피할 수 없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법무대응 인프라가 취약해 소송에 휘말릴 경우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단소송 확산에 '근심'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SK텔레콤(SKT) 유심 정보 해킹 사태와 관련해 집단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소송 참여자를 가장 많이 확보한 법무법인 대건에는 16만명 넘는 인원이 집단소송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건 외에도 법무법인 로집사, 노바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대륜 등도 수천~수만명 규모의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합치면 20만명을 훌쩍 넘는다.

통상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은 비슷한 피해를 입은 다수의 피해자가 공동으로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뜻한다. 로펌이 피해자들로부터 소송을 위임받아 공동소송 형태로 진행하기 때문에 비용이 분산돼 개인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게 특징이다. 그 덕분에 SNS에는 "각종 법무법인에서 집단소송 진행 중인데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으니 꼭 참여해 소액이라도 보상받자" "집단소송 참여 안 한 사람 있으면 꼭 해라"는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산업계에서는 집단소송 분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실제 지난 2022년 SK C&C 판교 인터넷데이터센터(IDC) 화재로 카카오톡을 포함한 카카오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자 일부 소비자가 카카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서비스 장애는 회사의 과실이 아니고, 위자료를 청구할 만큼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카카오 손을 들어줬지만, 카카오는 2심 전 조정 절차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1년 반 가까이 리스크를 떠안아야 했다. 이보다 앞선 2014년 KT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2만4000여명의 피해자가 모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18년 12월 대법원이 "KT가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지만, KT는 4년에 걸친 소송 기간 적잖은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소송이 실제로 제기되지 않았더라도 여론 악화는 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 지난 2022년 단건 배달비 인상, 새 광고 상품 등으로 논란이 붙어 자영업연대와 소송 직전까지 갔던 배달의민족은 지금까지도 부정적 여론에 타격을 입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소송 참여인원이 많아질수록 손해배상액 규모가 개별 소송보다 커져 금전적 부담을 무시할 수 없고, 사안이 여론전으로 번질 경우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스타트업은 '도산'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스타트업에 집단소송은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자금여력이 없는 데다가 별도의 법무팀이 없어 법적 대응능력이 취약해 한번 집단소송에 휘말리면 도산까지 이를 수 있는 탓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법적 대응이나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집단소송을 통한 영향이 대기업보다 훨씬 크다"고 덧붙였다.

이런 탓에 기업들은 최근 집단소송 불똥이 다른 사건으로 옮겨붙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번 집단소송 분위기가 대규모 주주 집단소송으로 가는 '격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선 이후 상법 개정이 현실화할 경우 주가 하락 및 경영사안과 관련한 주주소송이 잇따를 것이란 공포가 크다. 재계 관계자는 "2005년 국내에서 집단소송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가장 우려했던 게 줄소송 등으로 크고 작은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며 "향후 상법 개정 이후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 이어질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정경수 조은효 권준호 기자 welcome@fnnews.com 장유하 정경수 조은효 권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