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중인 74개 점포 중 48개 소실
불기둥 치솟고 방진 마스크 새까매져
"전기 안 들어와 장사 못 해"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노후 상가 건물에서 완진까지 12시간 넘게 걸린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9일 오전 건물이 잿더미로 변해있다. 이번 화재로 영업 중인 74개 점포 중 48개가 소실됐다. /사진=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동네가 다 폭삭 가라앉았구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완진까지 12시간 넘게 걸린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인 29일 현장은 '잿더미'였다. 불에 탄 가게들은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깨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불에 검게 그을린 간판 조각들이 이곳에 가게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상가 주변에 타다 남은 철근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200m 떨어진 곳에서도 숨을 쉴 때마다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다.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들이쉬면 목이 따가울 정도로 매웠다. 주민들의 기침 소리도 계속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25분께 세운대림상가 인근 3층 규모 상가 1층 창고에서 불이 시작됐다. 이 화재로 영업 중인 74개 점포 중 48개가 소실됐다. 연기를 흡입해 경상을 입은 70대 남성은 한양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좁은 진입로 탓에 진화가 늦어지며, 화재 발생 1시간 뒤인 오후 4시37분께 주변 소방서 인력까지 동원하는 대응 2단계가 발령됐다. 한때 을지로 4가~3가 시청 방향 차로가 전면 통제되기도 했다. 화재 12시간 30여 분 만인 오전 3시50분께 불이 완전히 진화됐다.
주민들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불안해했다. 이모씨(72)는 "연기가 직격탄으로 집에 다 들어가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근처 숙소에서 자고 온다"며 "어제 오후 3시25분쯤 펑펑 소리가 나며 불기둥이 치솟았고, 냄새가 말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진 마스크가 한 시간 만에 새까매졌고, 물걸레로 창문 틈을 막아도 재가 들어왔다"고 전했다. 20년 가까이 을지로에 살았다는 주민 유모씨(73)는 "가게를 운영하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서 3~4년씩 장사를 안 하고 공실인 곳도 많아 제대로 관리가 안 됐을 것"이라면서 "화재 원인이야 소방이 밝히겠지만,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개발을 앞둔 노후 건물에서 불이 시작된 탓에 시민 불안은 특히 컸다. 30년 가까이 전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권모씨(60대)는 "가게가 불에 타버렸다"며 "한옥 건물을 개조한 곳이 많아 한번 타면 불길을 잡기가 어렵다. 재개발을 한다고 해서 빈 가게가 많았는데 다들 떠나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나와서 탈 게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이어 "비닐 천막이나 천, 폐타이어는 한번 불에 타면 물 뿌려도 소용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상인들은 화재로 인해 전날 영업을 중단했다고 입을 모았다. 전기용품을 납품하는 신모씨(60대)는 "소방관들이 왔다 갔다 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7년째 가게를 운영하는데, 주변에 이런 불이 났던 게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전기가 끊겨 영업의 어려움을 겪는 상인도 많았다. 주민들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직후부터 전기가 끊겼다. 전기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60)는 "컴퓨터, 팩스기, 와이파이 모두 안 되고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빠른 피해 복구를 희망했다. 주민 백모씨(73)는 "이곳에 주민 30여 세대가 살고 있는데 다들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며 "불났을 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인분들도 상황 정리를 잘하고, 주민들은 편안하게 집에서 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52분께 화재 현장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 당국이 또다시 출동하기도 했다. 소방 당국은 열기로 인해 잔해에서 연기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물을 뿌려 안전 조치를 완료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오는 30일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할 방침이다.
jyseo@fnnews.com 서지윤 최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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