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현 금융부장·마켓부문장
170일 넘게 공석이던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선장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됐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승리의 달콤함을 즐길 여유는 없다. 국민통합, 민생회복, 통상협상, 외교·대북관계 등 새 대통령 앞에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한 때문이다. 어느 하나도 해결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경제 살리기'가 제일 급하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그렇게 외치던 국민의 '먹사니즘' '잘사니즘'에 관한 문제다. 취임 첫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구성을 지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1·4분기 한국 경제는 역성장(-0.2%)했고, 한국은행 등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연간으로도 0%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은 한은 전망(0.8%)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3%를 제시했다. 최근 30년 사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 밑돈 것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때가 전부다.
내수는 빈사 상태에 가깝다. 경기침체 신호에 가계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4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구당 실질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0.7% 감소했다. 2023년 2·4분기 이후 처음 감소세다. 앞으로 더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쌓여가는 빚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앞서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지만 대규모 산불피해 복구 등에 국한된 '급한 불 끄기'였다.
한은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p 내렸지만 경기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다.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2차 추경을 통한 재정정책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국가재정이 빠듯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글로벌 관세전쟁은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당장 5월 수출이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수출 1·2위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의 지난달 대미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7.6%, 32% 감소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협상이 제때, 제대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 모두의 일이니까 필요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가랑이 밑이라도 길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자세에 희망을 걸어본다.
관세전쟁이 본격화된 2·4분기 기업실적도 걱정이다. 그간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이차전지 등 제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산소호흡기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미 기업들은 투자를 포함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상태다. 자칫 우리 경제가 '설비투자 감소→고용·소득 감소→소비 위축→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꺼져 가는 대한민국호의 엔진이 다시 돌게 하려면 경제의 근간인 기업을 살려야 한다.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약속들이 헛된 약속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기를 바란다.
선거는 끝이 났다. 이제는 선거 기간의 분열을 뒤로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먹고사는 데 보수와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도 이렇게 먹고살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국민들의 아우성을 '환호'로 바꾸는 것이 새 정부의 첫 번째 숙제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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