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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위기 청소년 쉼터, '나는 봄' 곧 문 닫을 판...아이들 공간은 어디로...

전국 최초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 종료
센터 "서울시 운영 종료 결정 이해 어려워"
서울시 "운영 종료 후 기능 더해 재오픈"


12년 위기 청소년 쉼터, '나는 봄' 곧 문 닫을 판...아이들 공간은 어디로...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나는 봄 센터에 한의학 진료에 필요한 기기가 놓여있다. 사진=김형구 기자

[파이낸셜뉴스] #. 20대 A씨는 중학교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성범죄 피해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나는 봄' 센터에서 상처를 치유했다. 의지할 곳 없이 어머니의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던 A씨에게 병원 진료비는 늘 큰 부담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봄'의 무료 건강 지원과 따뜻한 밥 한 끼는 큰 위로가 됐고, 이곳을 '엄마 품'처럼 느끼게 됐다.
위기 여성청소년을 지원해 온 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이 운영 종료 위기에 놓였다. 정책 환경이 변화했고, 다른 지원센터와 기능이 중복된다는 점이 주된 이유다. 센터 측은 아이들이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며 반발하지만, 서울시는 사업 대상과 목적에 부합하는 통합 센터 건립을 위해 기존 사업 종료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10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이 한 달 뒤인 오는 7월 4일 운영을 종료한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센터 측에 운영 종료 방침을 공식 통보했다. 운영 종료를 한 달여 앞둔 센터는 주요 위기 청소년 사례 이관과 센터 내부 시설과 장비 재활용을 위한 점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봄'은 지난 2013년 서울시와 사단법인 막달레나공동체가 성매매, 성폭력 등 성범죄에 노출된 10~19세 위기 여성청소년을 돕기 위해 전국 최초로 설립한 센터다. 여성의학과, 치과, 정신건강의학과, 한의학과 등 전문의 약 20명이 위기 청소년들에게 진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필요에 따라 예방접종 및 상급의료기관 연계까지 지원한다. 개소 이후 센터의 도움을 받은 위기 여성청소년은 20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해 온 센터는 개소 12년 만에 문을 닫아야 한다. 서울시가 최근 센터에 사업 종료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센터는 그간 여성청소년의 사후 관리와 오프라인 교육에 중점을 두고 활동해왔으나, 서울시는 위기 여성청소년의 접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 예방 역량을 갖춘 통합 센터 건립을 추진하면 기존 센터 종료를 결정했다.

센터 운영 종료가 결정되자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통합센터 오픈 전까지 위기 여성 청소년들이 도움을 청할 공간이 자칫 사라질 수 있는 탓이다.

나는 봄 관계자는 "위기 여성청소년의 온라인 성범죄 연루를 사전 예방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사후관리와 아이들을 지킬 센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위기 청소년 아이들이 가장 먼저 연락하는 곳이 우리 센터"라며 "통합 센터 건립까지 걸리는 6개월 동안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해야 할 타이밍에 아무도 없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센터 측은 서울시 결정에 반발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14일부터 시작된 서명운동에는 현재까지 약 2만여명이 참여했다. 서울시약사회 여약사위원회도 센터 운영 종료에 유감을 표했다. 위원회는 "그동안 나는 봄 센터가 단순한 지원기관을 넘어 10여년간 위기 청소년을 위한 촘촘한 현장 대응망으로 기능해왔다"며 "이런 현장 기반의 대응 체계가 중단 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시는 이번 결정이 폐지가 아닌 재정비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위기 여성청소년 상대 온라인 성범죄 예방 기능을 추가한 센터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새 센터에는 인공지능(AI)을 통한 모니터링,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가출 청소년 유인 범죄 예방 기능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위험도가 높은 주요 관리 대상인 아이들은 각자에게 동의를 받아 수탁법인인 막달레나공동체로 이관해 공백기 간 관리할 예정"이라며 "자체 의료기능을 갖춘 나는 봄 센터를 유지·보수해 내년 1월 통합센터를 오픈할 것"이라고 전했다.

gowell@fnnews.com 김형구 장유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