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법안 등 숙의 과정 필요
민생과 경제법안 처리가 우선순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 사진=연합뉴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핵심 쟁점법안 처리가 속도를 내고 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상법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다. 그동안 여야 의견 차가 컸고, 지금도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는 법안이다. 특히 상법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은 재계에서 지속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보란듯이 이 법안들을 속전속결,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추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제안된, 의견이 모아지지도 무르익지도 않은 법안이다. 민주당은 선거가 끝난 다음 날인 지난 4일 오후 곧바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대법원 재판 건수가 폭주하고 있어 대법관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어떤 법안도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는 게 필수적인 입법 절차다. 명분이 없지도 않은 대법관 증원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처리할 이유가 없다. 재조와 재야 법조계, 학계 등의 의견을 청취한 다음 규모를 정해도 늦지 않다. 사법 체제에 큰 변화를 주는 백년대계인 만큼 숙의가 필요하다.
상법개정안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공약집에도 담긴 상법개정안을 신속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상법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민주당은 지난 3월 이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청업체 노조도 원청과도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넓히는 노란봉투법도 민주당의 국회 표결에 거부권 행사로 충돌해온 법안이다.
여소야대 정국으로 행정권과 입법권을 동시에 갖게 된 현 정부와 민주당은 어떤 법안이든 장애물 없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 종전처럼 거부권 행사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소수 야당이 된 국민의힘도 표결로 누를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정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법안들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처리한다면 민심의 반발만 사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다. 민생과 경제 살리기가 새 정부의 최대 과제라고 한다면 그와 관련된 입법과 행정 정책을 먼저 처리하는 게 국민들을 흐뭇하게 할 것이고 모양새도 좋다. 그러지 못하고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입법폭주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와도 어긋나고, 그 이전에 민심을 이반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이 법안들은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새 정부의 1호 법안으로 공표하면 초기부터 나라는 거센 저항과 마찰로 시끄러워질 것이다. 공론의 장에서 반대편 의견을 경청하고 설득해서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는 게 매끄러운 국정운영이다. 법안도 절차적 공정성을 거쳐야 뒷말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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