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다시 뒤집어 최종 계약
새 정부도 수출 적극 지원 나서길
체코 테멜린 원전./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26조원 규모 체코 원전 계약 체결이 지난 4일 전격 성사됐다. 앞서 지난 5월 체코 법원이 경쟁사 프랑스 업체의 가처분신청으로 계약중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체코 정부의 항고에 법원이 다시 판결을 뒤집으면서 새로운 국면이 된 것이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법원 결정 후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수력원자력과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가 신규 원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체코 당국도 한국 원전의 계약 성사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걸 말해준다.
수출 문이 급격히 좁아지는 엄혹한 경제 현실에서 체코 원전의 수주계약이 원만히 마무리된 것은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해외 원전 수주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이다. 그 후 프랑스, 중국 등 경쟁국에 밀려 수주 소식은 감감했다. 이번 최종계약까지도 숱한 곡절이 있었다. 애초 지난해 7월 체코 정부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을 상대로 지식재산권을 문제 삼으며 고비를 맞았다.
지난 1월 가까스로 해결돼 한숨 돌리는 듯했으나 덤핑수주, 헐값계약 의혹이 국내에서 들끓었다. 원전 반대론자들이 경쟁사의 억지 주장을 그대로 따라하며 발목을 잡았다. 양측 정부가 밀어붙여 5월 최종계약일을 확정했고 그에 맞춰 우리 측 합동대표단이 체코 현지로 날아갔지만, 계약일 전날 체코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정 결정으로 계약이 눈앞에서 물거품이 됐다. 그 뒤 체코 당국의 항고가 받아들여져 결국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체코 계약은 원전 본산지인 유럽 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수주액은 일단 26조원 규모지만 향후 추가로 나올 건설 물량까지 감안하면 50조원 이상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 설계부터 건설,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한다는 점에서도 더욱 의미가 크다. 한전기술(설계), 두산에너빌리티(주기기·시공), 대우건설(시공), 한전연료(핵연료), 한전KPS(시운전·정비) 등이 원팀 코리아 멤버다. 두코바니 현장에는 곧 건설소가 개소된다고 한다.
체코를 교두보 삼아 폴란드 등 인접국으로 발을 넓히고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 중동·동남아 신흥 원전 개척에도 힘을 낼 수 있길 바란다. 원전은 이제 탄소중립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가마다 줄을 이었던 탈원전 행보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이탈리아, 덴마크 등 일찍이 탈원전을 했던 나라들이 앞다퉈 친원전으로 방향을 트는 이유를 상기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와 맞물려 폭증하는 전력 수요는 국가마다 중대한 과제가 됐다. 원전 없이 대규모 전력 공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상기후로 인해 급증하는 가구당 전기소비를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도 원전밖에 없다. 탈원전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으로 극심한 피해를 봤다. 세계가 부러워한 원전 생태계가 고사 직전까지 갔다.
원전 산업은 윤석열 정부 이후 간신히 살아나 도약의 발판을 다졌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중대 기로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탈원전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으나 소형모듈원전(SMR)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정도에서 긍정적인 입장이다. 최고지도자와 정부의 강력한 뒷받침이 없으면 해외 대규모 수주는 불가능하다. 원전정책을 되돌리는 일 없이 K원전을 성장동력으로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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