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민 문화대기자
대선 바로 다음 날인 지난 4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새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책 10권을 발표했다. 이는 대선 직전 3주간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어른 김장하' '공정하다는 착각'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정의란 무엇인가' 등이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그날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주시길" "오늘을 있게 해준 5월의 영혼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같은 추천 이유를 남겼다. 같은 날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낭독된 취임선서에서 새 대통령은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한강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미래의 과거가 될 차례"라고 했다. 이걸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한강의 소설을 읽은 것이 분명하다.
나는 독자들이 추천한 이 도서목록에 한 권의 책을 더하고 싶다. 미국 역사학자 도리스 굿윈이 쓴 링컨 일대기 '권력의 조건'이다. 지난 199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관한 책 '노 오디너리 타임(No Ordinary Time)'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굿윈은 이후 10년간 에이브러햄 링컨에 매달렸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자료와 주변 사람들의 편지, 일기 등을 참고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해방을 선언한 링컨의 정치역정을 새로 썼다. 무려 830쪽에 달하는 이 두툼한 책은 지난 201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여기서 키 크고 깡마른 링컨 역을 맡은 영국 배우 대니얼 데이루이스는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등 각종 연기상을 휩쓸었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링컨이 험난한 당내(공화당) 경선과 치열한 선거 끝에 드디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였다. "링컨은 종이에 일곱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목록에는 대통령 후보 공천 당시 그의 경쟁 상대였던 수어드, 체이스, 그리고 베이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밖에 옛 민주당원인 몽고메리 블레어, 기디언 웰스, 노먼 저드, 옛 휘그당원 윌리엄 테이턴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299쪽) 결국 링컨은 처음 종이에 메모했던 것처럼 경선 맞상대였던 윌리엄 수어드와 새먼 체이스, 에드워드 베이츠를 각각 국무장관, 재무장관,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또 자신을 "시골뜨기 고릴라"라며 노골적으로 경멸했던 야당 중진 에드윈 스탠턴을 지금의 국방장관인 전쟁장관에 앉히며 중용했다. 도리스 굿윈이 쓴 이 책의 원제가 '팀 오브 라이벌(Team of Rivals)'인 까닭이다.
'팀 오브 라이벌'의 다른 이름은 '탕평(蕩平)'이다. 탕평의 가장 극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인물을 한 명 꼽으라면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를 들 수 있다. 정조는 자신의 거실을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고 불렀다. 당쟁의 폐단을 탕평책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할아버지 영조의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뜻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또 뛰어난 독서가였던 그는 자신이 소장한 책에 찍는 장서인(藏書印)으로 '탕탕평평 평평탕탕' 여덟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정조의 탕평 인사 중 압권은 반대파인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를 중용한 것이다. 심환지는 사사건건 임금과 부딪쳤지만 정조는 그를 내치지 않았다.
가톨릭 교단에서는 성인을 추대할 때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 즉 악마의 대변인을 둔다.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블스 에드버킷은 집단적 사고의 오류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찬성할 때 과감하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올바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링컨의 스탠턴이나 정조의 심환지처럼 반대자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의 리더십이 절실한 이유다. '팀 오브 라이벌'의 저자 도리스 굿윈은 "마음을 얻는 것이 권력의 시작이다"라고 썼다. 천신만고 끝에 권좌에 오른 이재명 대통령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인사를 통해 감동을 선물하길 기대해 본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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