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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의 역설' 5년 사이 국내 기업, 시장성 조달 100조 폭증 [fn마켓워치]

[파이낸셜뉴스] 국내 기업들의 부채가 5년 사이 100조원 넘게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졌던 코로나19 시기에 회사채 등으로 대거 조달한 자금이 '빚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어 기업들의 채무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 및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87개 그룹 624개 기업의 회사채 및 단기물 잔액은 9일 기준 422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9년 12월 31일 기준 293조1990억원 대비 120조원 넘게 급증한 규모다.

지난 2010년 135조3968억원을 고려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부채가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다. 지난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발병하면서 2020년부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0%대 초저금리 기조 속에서 국가는 물론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빚을 늘린 결과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회사채 규모가 전체 규모의 72%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 2019년 12월 말 원화채는 231조4437억원에서 올해 6월 9일 기준 305조4118억원으로 6년새 7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기업어음(CP),전단채 등 단기자금도 30조9327억원에서 53조8911억원으로 23조원가량 늘었다. 해외 외화표시채권(KP)도 30조8225억원에서 63조5628억원으로 30조원 넘게 증가했다.

잔액 기준으로 시장성 부채(원화채, 단기물, KP물)가 가장 많은 그룹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의 사업구조상 캐피탈채 물량이 상당해서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시장성 부채 잔액은 2019년 12월 말 53조에서 올해 6월 9일 기준 59조원대로 약 6조원가량 증가했다.

두번째로 많은 그룹은 SK이다. 같은 기간 SK그룹은 36조원대에서 57조원대로 약 20조원 넘게 늘었다. 삼성과 LG그룹은 각각 10조원 가까이 자본시장성 부채를 늘렸다. 삼성그룹은 14조원대에서 24조원대로, LG그룹은 19조원대에서 29조원대로 증가했다. 포스코도 7조원대에서 17조원대로, 한화그룹도 11조원대에서 20조원대로 10조원 안팎의 시장성 부채를 늘렸다.반면 롯데그룹의 시장성 부채는 31조원대에서 26조원대로 줄었다. 유동성 개선을 위한 계열사 사옥을 비롯한 부동산 매각 등으로 빚 규모를 줄인 영향이 컸다.

다만, 이들 기업은 그림자금융이라 불리는 유동화증권까지 더하면 부채 규모는 수십조원이 더 불어나게 된다.

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기업들의 회사채, 하이브리드증권, 매출채권,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유동화증권 잔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대출채권을 기초자삼으로 삼아 발행한 유동화증권 잔액은 2019년 12월 말 28조원대에서 올해 6월 43조원대로 15조원 가까이 폭증했다. 같은 기간 회사채 기초 유동화증권 잔액은 4조원수준에서 올해 6월 15조원대로, 하이브리드증권 기초 유동화증권 잔액은 2조원 수준에서 4조원 수준으로 늘었다.

시장에서는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으로 회사채 절벽(만기 몰린 구간)에서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이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기준금리가 올해 인하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가능성으로 장기금리가 급등하는 등 시장불안이 계속되고 있어 기업들은 차환을 놓고 긴장하는 분위기다.
채권금리가 여전히 고공 행진을 할 경우 이러한 이자 및 차환부담을 키울 수 있어서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대선 이후 주가가 오르고 원화 강세가 심화되는 등 긍정적 반응이지만 채권시장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면서 "새 정부 출범이후 35조원 추경이 부각되면서 시장 흔들림이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미국 금리인하 기대 후퇴에 혹 연내 50bp 이상 인하가 힘들어질 경우 국내 금리인하 역시 기준금리 2.00%가 아닌 2.25%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럴 경우 국고10년은 추가 20bp를 더해 3.2%대까지 오를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