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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수묵화·금불상… 새 나라 조선에 분 '세 바람' [Weekend 문화]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8월 31일까지 전시
15~16세기 국보·보물 등 691개作 공개
분청사기 거쳐 새하얀 백자시대 열리고
먹의 농담 돋보이는 수묵산수화가 주류
왕실부터 민간차원 불교 작품도 총망라

백자·수묵화·금불상… 새 나라 조선에 분 '세 바람' [Weekend 문화]
산수도.
백자·수묵화·금불상… 새 나라 조선에 분 '세 바람' [Weekend 문화]
국보 166호 백자철화매죽문호.
백자·수묵화·금불상… 새 나라 조선에 분 '세 바람' [Weekend 문화]
조계사 목조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뉴스1
"한 시대가 일어나면 반드시 한 시대의 제작이 있습니다(故曰一代之興, 必有一代之制作)."

조선의 근간을 세운 대학자 정도전이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 아뢴 말이다. 새 시대가 열리면 기존의 낡은 규범을 타파하고 모든 분야의 새로운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새 시대를 향한 이들의 열망은 새 나라인 조선의 미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도자에선 고려청자보단 선비의 맑은 정신을 담은 백자를 선호했고 서화에선 이상 세계를 구현한 수묵화가 주목받았다. 비록 유교시대로 바뀌었지만 불교미술 또한 왕실의 비호 아래 공예·불화·사경이 꽃피웠다. 이처럼 200여년의 조선 전기는 오늘날 우리 문화의 중요한 바탕이 형성된 시기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전기 미술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대규모 전시가 서울 용산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으로 이전·개관한지 20주년을 맞아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을 오는 8월 31일까지 전시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시작과 함께 꽃핀 15~16세기 미술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도자, 서화, 불교미술 등 당시 미술을 대표하는 691건의 작품이 출품됐다. 국보 16건과 보물 63건 등 다수의 국가지정문화유산이 포함된다. 국내 처음 공개하는 작품도 23건에 달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그간 조선 후기 미술과 비교하면 조선 전기 미술의 면모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조선 후기에 비해 현존 작품 수가 적으며 주요 작품 중 다수가 국외에 있어 접하기 어려운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전시는 조선 전기 미술의 대서사를 도자, 서화, 불교미술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시기 도자는 분청사기를 거쳐 새하얀 백자 시대를 맞이했다. 회화에서는 먹을 위주로 한 회화가 주류가 됐고 수묵산수화가 꽃을 피웠다. 불상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금색은 변치 않는 불교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1부 전시실에는 조선 전기 도자의 흰빛을 향한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됐다. 길이 14m, 높이 3m의 벽에 고려 말 상감청자에서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까지 박물관 소장 도자 300여건이 색의 변화에 따라 배치됐다.

특히 박물관 소장 '송하보월도', 일본 모리박물관 소장 '산수도' 등 조선 전기 서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는 작품도 다수 있다.

'송하보월도'는 그간 조사 연구에 의해 달과 매화가 붉은 안료로 채색된 사실이 밝혀졌다. 화면 가운데 마르고 단단한 소나무를 배치하고, 아래에는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그렸다. 하늘에는 붉은 색으로 칠한 달이 떠 있는데, 테두리를 금색으로 그렸다. 바위 앞에는 고사와 시동이 서 있다. 바위와 산은 대부벽준으로 표현됐으며, 전체적인 구도와 표현 방식은 중국 남송시대 마하파 화풍을 따른 것이다.

일본 모리박물관 소장 '산수도'는 기존에는 중국 작품으로 여겨졌지만, 그간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조선 전기 작품으로 재평가됐다.

봄, 여름, 가을의 경치를 담은 세 폭의 산수화로, 원래는 사계절 전체를 그린 것인데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와 넓은 공간, 언덕 위 두 그루의 소나무 등에서는 안견파 화풍의 특징이 드러난다. 다만 파도처럼 흘러가는 구름과 강한 명암 대비에서는 미법산수와 절파 화풍의 흔적도 엿보인다.

거대한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속 장면, 정교한 건축 묘사와 화려한 채색은 전문 화원의 솜씨를 보여주며 건축 기단에 표현된 '허튼층쌓기'는 조선 건축 표현의 한 단면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한때 중국 송나라 미우인의 그림으로 여겨졌으나 16세기 중반 조선 화원이 그린 것으로 본다.

이밖에 원래 세트였으나 서로 다른 기관에 소장된 작품들도 선보인다. 미국 라크마(LACMA) 소장 '산시청람도'와 일본 야마토문화관 소장 '연사모종도'는 '소상팔경도' 중 두 장면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이들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왕실 후원의 불상과 불화에서부터 불교 서적과 민간 차원에서 조성된 불교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 이 시기 불교미술의 진면목을 재조명한다.

한편, 프롤로그 '조선의 새벽, 새로운 나라로'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발원해 금강산에 봉안한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을 만난다. 1부 '백(白), 조선의 꿈을 빚다'에서는 국가 체제의 힘으로 견인한 조선 전기 도자 산업의 전모를 살펴본다.


2부 '묵(墨), 인문으로 세상을 물들이다'에서는 조선 전기 사대부의 이상을 담은 서화를 소개한다. 3부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맞닿아 있던 불교미술을 조명한다. 에필로그 '조선의 빛, 훈민정음'에서는 '훈민정음'을 소개하며 전시를 마무리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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