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영웅.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요즘은 팬질도 기부로 인증하는 시대예요."(팬클럽 관계자)
"팬클럽의 이미지가 연예인의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에 나눔을 같이 실천하는 추세입니다."(연예기획사 홍보실장)
연예계에선 '연예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팬들도 닮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 연예인에 그 팬'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같은 대외적 이미지 덕분에 연예인들은 본심 여부를 떠나 기부나 봉사 활동에 나서며, 팬들에게도 나눔에 동참하자고 강조한다. 팬들도 연예인의 선한 이미지를 상승케 하기 위해 나눔을 몸소 실천한다.
과거 연예인만 응원하고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던 사생팬 문화에서 연예인과 함께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성숙한 팬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팬클럽의 선한 영향력에 따라 연예인의 생명이 나락으로 갈지 결정되기에 연예인들의 팬클럽 관리는 필수고, 본인의 얼굴인 '명함'인 셈이다.
19일 연예계와 NGO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주요 팬클럽들은 최근 들어 유기동물 후원, 다문화 아동 대상 도서 기증, 독거노인 대상 도시락 봉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일마다 기부와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팬클럽 일부는 매년 연예인 생일마다 연예인 이름으로 기부하자는 캠페인을 통해 정기적으로 아동 복지기관이나 NGO 단체에 장난감과 물품, 현금을 전달 중이다.
이제 팬클럽의 사회적 이미지가 연예인의 '인성'과 '브랜드'까지 대변하는 시대인 만큼 팬클럽끼리 경쟁하고 세상에 알리는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팬클럽 구성원 중 '연예인 이름으로 기부해 본 적 있다'는 응답은 2018년 14%에서 2023년 41.2%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팬들은 SNS 챌린지를 통해 기부 인증을 확산시키고, 2030 팬들은 환경·젠더 감수성 기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4050 팬들은 정기적인 지역사회 봉사와 장기 후원에 적극적이다. 연령층에 따라 팬클럽의 기부 문화도 다른 셈이다.
블랙핑크 리사, 경상북도 의성 고운사 산불 현장. 연합뉴스
대표적으로 가수 임영웅과 정동원, 영탁, 이찬원 등은 중년층으로부터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에스파, 르세라핌, 뉴진스, 블랙핑크 등은 10~20대층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임영웅은 국내 최대 규모와 단결력의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팬클럽 '영웅시대'는 전국 네트워크 망을 형성했기 때문에 집단적인 봉사나 기부에 나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영웅시대'는 최근 임영웅의 서른 네번째 생일(웅탄절, 6월 16일)을 맞아 어려운 이웃에 1억5675만6000원(현금 1억4005만6000원, 물품 1670만원)이나 기부했다. 그간 '영웅시대'는 임영웅 생일 때 5년 간 무려 11억6834만원을 기부하거나 직접 봉사에 나서 생일의 의미를 더한 바 있다.
'영웅시대'는 평소 '기부 천사'로 알려진 임영웅이 팬들에게 생일 선물보단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기부와 봉사를 강조한 만큼 나눔에 동참하자는 내부 지침이 있다. 임영웅은 지난 2021년부터 평소 팬들의 선물을 일체 받지 않고 손편지만 받고 있으며, 팬들에게 나눔을 실천하자고 강조하는 것은 알려졌다.
'영웅시대' 관계자는 "임영웅이 선물보단 어려운 이웃과의 나눔을 강조하기 때문에 우리도 기부와 봉사에 적극 나서는 것"이라며 "팬들의 선행을 위해서, 임영웅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나눔 실천은 필수"라고 전했다.
반면, 팬클럽 기부 문화의 긍정적 효과와 달리, 부정적 영향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부 문화가 연예계에 만연하다 보니 기부를 안 하는 연예인이나 그 팬클럽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가수 정동원. 뉴스1
실제로 인기 연예인들이 기부를 하지 않으면 연예인들의 인스타그램으로 기부 강요 DM(다이렉트 메시지)이 수도 없이 쏟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소속사의 부대표는 "소속사 가수가 '너는 돈도 많이 버는데 재앙을 눈 감고 있는 게 사람이냐'는 취지의 DM들을 수시로 받아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다"며 "이에 인스타그램을 폐쇄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3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명인 산불 기부 명단'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 작성자는 기부 사실이 알려진 유명인들을 기부 금액이 큰 순서대로 나열해 기부 명단을 만들었다.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얀마와 태국 강진으로 피해를 본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 안전하길 바란다"라는 글을 영문으로 게재했더니 수십만 건의 한국인 항의 DM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 내용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재난을 외면한다"는 것이었다.
리사 외에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그룹 2PM 닉쿤, 갓세븐 뱀뱀, (여자)아이들 민니, 베이비몬스터 치키타 등 태국 출신 아이돌 멤버들이 동남아 강진의 안전을 당부하며 위로하자 한국 산불 피해와 관련해 기부 하라는 협박성 DM들이 쏟아진 바 있다.
MZ세대 문화 전문가인 김형찬 평론가는 "1990년~2000년대 성행했던 사생팬 문화가 현시대 들어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 연예인 순위를 정하고 경쟁하고 매장시키는 문화는 그대로"라면서도 "다만 기부 문화가 이웃과 함께 하는 좋은 취지인 만큼, 팬클럽 간의 경쟁보단 자의적인 선행으로 이뤄지는 팬문화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이 시간 핫클릭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