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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원조' 인색해진 지구촌… "韓, 인도주의 리더십 발휘할 시점" [Weekend 문화]

국제구조위원회 새 원조방향 제시
지역NGO·커뮤니티 기반으로 구호활동
국제기구와 동등한 파트너십 구축 절실
"수혜국이었던 한국 적극 동참해야" 강조
수단 등 13개국 지원 사각지대 내몰려
기후위기·분쟁 등 원인으로 빈곤율 증가
미국 등 주요 공여국 원조마저 줄어 위기
유엔이 요청한 예산대비 250억달러 부족

'난민 원조' 인색해진 지구촌… "韓, 인도주의 리더십 발휘할 시점" [Weekend 문화]
'난민 원조' 인색해진 지구촌… "韓, 인도주의 리더십 발휘할 시점" [Weekend 문화]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을 맞아 전례 없는 국제 원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기후 위기·분쟁·빈곤이 중첩된 복합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국제 원조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 등 주요 공여국들이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인도적 지원에 대한 수요는 사상 최대치에 도달한 실정이다. 이런 국제 위기 속에서 공여 선진국으로 전환한 한국의 인도적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19일 국제구조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억여명이 국제 지원을 필요로 했지만, 유엔이 요청한 예산 대비 약 250억달러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은 이미 전체 해외 원조의 80% 이상을 중단했으며, 보건분야 예산 삭감만으로도 향후 15년간 최대 2500만명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최근 발표한 '원조의 새로운 시대(A New Era for Aid)' 보고서를 통해 "이제 단순한 지원을 넘어, '가장 시급한 곳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원조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제 이주 1억2000만 위기시대

유엔 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박해, 분쟁, 인권 침해, 사회 질서 붕괴 등으로 강제 이주한 전 세계 인구는 지난 4월 기준 1억2210만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14년 기준 5950만명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4300만명 이상의 기후 난민이 발생했다.

문제는 자원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원조의 대상과 방식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선택받기 위한 경쟁'에 점점 더 내몰리고 있으며, 그 결과 일부 고위험 국가는 지원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체 공적개발원조(ODA) 중 인도적 지원의 비중은 약 14%에 불과하며, 기후 변화 대응, 난민 수용, 평화·안보 등 다양한 분야로 자원이 분산되고 있다.

반면, 분쟁으로 인한 빈곤 인구 비율은 1990년 10%에서 지난해 50%로 치솟았지만, 분쟁국에 대한 원조 비중은 2019년 33%에서 2023년 22%로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가장 절박한 위기 속에 놓인 지역과 인구에게 자원이 충분히 배분되지 못하고 있는 구조적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취약한 13개국, 구조적 위협 상황

국제구조위원회는 이런 지원 불균형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보고서를 통해 다섯 가지 구조적 위협 요인을 제시했다. △미국 원조 의존도 △무상 원조 비율 △인도적 필요 수준 △채무위험 및 최빈국 여부 △분쟁 및 기후 취약성이다. 미국 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국가는 원조 중단과 동시에 식량, 의료, 교육 등 핵심 서비스에 즉각적인 공백이 발생한다. 이런 구조적 조건을 모두 충족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수단, 예멘, 에티오피아 등 총 13개국이다. 이들 국가는 전 세계 극빈층의 25% 이상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2023년 전체 ODA의 10%도 지원받지 못했다.

■접근성과 지역 대응력 강화해야

국제구조위원회는 매년 '세계 위기국가 보고서'를 통해 향후 인도적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85~95%의 정확도로 예측하고 있다. 분쟁과 기후 위기가 중첩된 고위험 지역은 외부 구호 조직의 진입조차 어려운 상황이며, 원조 삭감에 취약한 13개국 중 남수단·예멘·소말리아 등 10개국은 접근성 평가에서 최고 위험 등급을 받았다. 지난 2023년에는 이들 지역에서 200건 이상의 구호 인력 대상 공격이 발생했다. 이같은 환경에서는 지역 NGO와 커뮤니티 기반 조직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은 지역사회와의 신뢰, 문화·언어적 이해, 현장 민첩성을 바탕으로 분쟁과 재난 속에서도 실질적 구호 활동을 지속할 수 있지만, 최근 ODA 삭감으로 프로그램의 80~90%가 축소되거나 중단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대응을 위해서는 이들의 역량과 리더십을 강화하는 체계적인 투자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 NGO와의 협업 구조 재설계도 시급한 실정이다. 기존 국제-지역 NGO 협력은 하청에 가까운 구조였지만, 이제는 결정권과 자원의 실질적 이전을 기반으로 한 '동등한 파트너십' 모델로 협력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국제구조위원회는 '파트너십 역량 강화 시스템'을 운영하며, 기금의 15% 이상을 지역 파트너에 직접 배분하고 있다.

■한국, 역사와 책임으로 동참해야

전세계 난민 문제는 한국 사회에 직접적인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 역시 불과 75년 전, 6·25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수많은 난민을 배출하고, 생존을 위해 버텨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국가 예산의 40% 이상이 국제 원조에 의존할 정도로 생존과 재건은 국제사회의 연대에 크게 기대야 했다.
그러나 반세기 후인 2009년, 한국은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국제사회 최초로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국가'가 됐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발전을 넘어 과거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연대가 어떻게 한 국가의 부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 대표는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1억2000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새로운 노력과 혁신적인 해법에 우리 사회가 더욱 능동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며 "앞으로 한국이 인도적 리더십을 발휘해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