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개발장관 "경기 침체로 떨어지고 있다"
우크라 침공 이후 처음으로 경제 위기 공식 인정
전시 경제로 버텼지만 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 위기
전비 충당하던 유가도 정체 상태
지난 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서 행인들이 대형 사모바르(찻주전자)가 설치된 가게 주변을 지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3년 넘게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 정부가 침공 이후 처음 공개적으로 경제 위기를 인정했다. 그동안 전시 경제 체제와 석유 수출로 경제를 지탱했던 러시아는 물가상승과 정체된 유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의 막심 레셰트니코프 경제개발장관은 19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 참석해 경제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숫자를 보면 (러시아 경제가) 식어가고 있다"면서 "현재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보면 우리는 이미 눈 깜짝할 사이에 침체로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올해 국방 예산을 전년보다 약 25% 늘린 13조1000억루블(약 230조원)로 설정하며 막대한 비용을 전쟁에 쏟아 붓고 있지만 전쟁 내내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했다. 러시아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전쟁 전인 2021년에 5.9%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쟁이 발생한 2022년에 1.4%로 줄었으나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4.1%를 기록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통계를 조작했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러시아 경제가 전시 체제로 변경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러시아가 무기 생산에 집중하면서 군수 산업 투자 및 고용이 늘어나고, 총동원령 대신 표면적으로 모병을 통해 병사를 충당한 까닭에 낙후 지역의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 경제도 한계에 가까워졌다. FT는 서방의 경제 제재로 물가가 계속 오르는 가운데 경제 전반에 수요가 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의 징조로 볼 수 있다. 러시아중앙은행(CBR)은 이달 기준 9.8% 오른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고금리 체제를 유지했으나, 지난 6일 기준금리를 21%에서 1%p 내렸다. FT는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큰 이득을 챙긴 군수기업들조차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CBR을 상대로 금리 인하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레셰트니코프는 올해 러시아 GDP 성장률을 2.5%로 보고 있으나 오는 8월 CBR의 금리 결정 이후 이를 수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CBR이 보는 올해 GDP 성장률은 1~2% 사이다. CBR의 엘비나 나비울리나 총재는 19일 SPIEF에서 물가상승률 목표가 4%라며 이를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체되고 있는 국제 유가도 러시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석유 등 천연가스 판매로 전비를 충당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올해 들어 미국발 무역 전쟁과 중국의 경기 둔화, 중동 산유국들의 증산으로 유가가 급락하자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20일 기준 배럴당 75달러 수준이며 이달 이스라엘·이란 충돌로 인해 한 달 만에 배럴당 약 15달러 올랐지만 여전히 올해 1월 고점(77달러)에 못 미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8일 경제 각료들과 만나 "경제 성장과 구조 변화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같은 날 SPIEF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와 “가능한 빨리” 종전을 원하며 평화적인 방법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날 준비가 됐다면서 “러시아는 협상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로 누가 나오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 참석해 인도네시아 정상과 대화하고 있다.AP뉴시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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