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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기술빅뱅] 팔란티어의 미션

괴짜CEO와 전설의 투자자
자유와 안보, 효율 극대화
융합형 인재 적극 육성을

[최진숙의 기술빅뱅] 팔란티어의 미션
최진숙 논설위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 초반 가장 먼저 만난 서방 기업인은 미국의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 알렉스 카프였다. 러시아의 침공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카프는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쓸어올리며 젤렌스키에게 말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우크라이나를 돕겠노라고.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보다 앞서 3개월 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한밤의 담화 발표 직후 러시아군은 국경을 넘었다. 군의 위치와 움직임을 실시간 지도로 만든 이가 다름아닌 팔란티어 요원들이다. 수천개 상업위성과 정찰드론, 지상센서로 정보를 수집했다. 포착된 위치가 팔란티어 시스템에 들어오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이를 종합해 포병, 전차, 포병부대 이동 예상경로를 만든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팔란티어 지도 정보를 태블릿으로 전송받아 즉각 사격 좌표로 활용했다. 팔란티어 플랫폼이 서방 동맹국의 데이터 허브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팔란티어의 이름은 최근의 굵직한 세계 전쟁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가장 최근은 이스라엘의 기습적인 대이란 공습 작전에서다. 이스라엘이 팔란티어 AI플랫폼(AIP)을 통해 이란 나탄즈 핵시설과 핵과학자, 최고 수뇌부 암살 작전을 수행했다는 게 유력하다. 이란이 그토록 맥없이 무너진 것과 팔란티어의 정보력은 결코 무관치 않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헤즈볼라와 싸울 때도 팔란티어는 감시자 행동패턴을 분석하고 표적을 뽑아줬다. 시간을 더 거슬러가면 미국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에도 팔란티어의 흔적이 뚜렷하다.

베일에 싸여 은밀히 움직이는 비밀결사체 같은 조직이 팔란티어다.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충격에 휩싸인 실리콘밸리 선각자가 테러 예측 빅데이터 업체 설립을 구상한다. 세계의 테러 악행을 줄이고, 사회를 혁신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할 것. 이런 거대한 주제가 창립 비전이었다. 강력한 데이터 분석기술로 안보에 힘을 보태면서 동시에 시민들의 사생활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했는데, 동시에 풀기 어려운 이 과제를 팔란티어는 지금도 붙들고 있다.

2003년 닻을 올린 후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투자자들은 밑도 끝도 없는 사업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카프는 세쿼이아 캐피털을 찾아갔을 때 마이클 모리츠 회장이 미팅 내내 종이에 낙서만 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길은 중앙정보국(CIA)이 열어줬다. CIA의 벤처 인큐텔의 투자는 지원액수를 떠나 정부기관과 공조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 후 국방개혁, 범죄 소탕, 테러 예방 같은 사업에 기존 대형 방산·보안 업체를 제치고 팔란티어가 주력군이 됐다. 방대한 빅데이터의 숨겨진 패턴을 찾고 이질적인 정보를 연결해 맥락을 부여했다.

이 기상천외한 기업을 창업한 이들 면면도 이보다 흥미로울 수 없다. 카프는 유대계 의사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 어머니 밑에서 정의감이 투철했던 유년기를 보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거쳐 독일에서 비판철학으로 박사를 받은 인물이다. 박사 논문 주제가 '일상 세계의 공격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일하지 않을 땐 수영과 태극권, 명상의 시간이 전부인 괴짜 CEO다.

카프를 팔란티어로 끌어들인 이가 앞서 언급한 실리콘밸리 선각자이자 페이팔 신화 주역 피터 틸이다. 틸의 학부 전공도 철학이다. 회사 이름을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진실을 꿰뚫어 보는 수정 구슬(팔란티어)'로 정한 이도 틸이었다. 두 사색가의 이념은 사회주의 좌파와 보수 우파로 갈리지만 지향점은 확고한 안보와 자유, 민주주의로 같다. 기업 해결사도 자처한다. 이 미션에 실행 좌표를 만드는 이가 기술천재 스티븐 코헨이다. 2주 만에 모든 걸 해낸다고 해서 'Mr.2주'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이다.


철학과 소신, 기술의 융합이 팔란티어의 뼈대라고 본다. 한국형 팔란티어의 관건도 여기에 있다. 기술엘리트를 키우고 사색하는 젊은이에게도 길을 열어주라. '붕어빵'을 찍어내는 교육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

jin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