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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 해체] 원전 해체 산업 신호탄...500조원 글로벌 시장 열린다

[파이낸셜뉴스] 고리 1호기 해체 결정은 우리나라 원전 해체 산업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50년 원전 해체 시장 규모가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제 해체 경험과 기술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원전의 전 주기 관리 체계를 갖춘 국가로 도약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되며, 향후 글로벌 해체 시장 진출의 시험 무대가 될 것으로도 평가된다. 다만 해체 산업이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만큼, 단순한 기술 확보를 넘어서 제도, 인력, 생태계 전반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00조원 성장 기대 원전 해체 시장
2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 세계에 영구 정지 상태로 아직 완전 해체되지 않은 원전이 188기에 달하며, 2050년까지 총 588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별로 추산에는 차이가 있지만, 2030년부터 본격적으로 원전 해체 시장이 열리며 2050년에는 시장 규모가 약 5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원자력 업계의 관측이다.

전 세계에서 원전 해체 경험을 보유한 국가는 많지 않으며, 특히 상업용 대형 원전을 해체해본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전 해체 핵심 기술 96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58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38개를 확보하고 있다.

고리 1호기 해체를 통해 실제 해체 경험이 축적되면, 단순한 원전 해체를 넘어 첨단 기술 산업의 테스트베드이자 수출 산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체코 두코바니 원전 등 수출과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 설비 개선사업(계속운전) 등 전방 산업만 수출해왔다. 하지만 고리 1호기 해체를 통해 해체 기술까지 확보하면, 원전의 건설부터 운영, 해체까지 원전 산업 전 주기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도·인력·생태계 전반 체계적인 준비 필요
다만 원전 해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 양성 및 기술 실증 △제도 및 규제 정비 △산업 생태계 구축 △국제협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선 원전 해체는 고난도의 방사선 제염, 정밀 절단, 폐기물 처리 기술이 요구되므로 전문 인력 양성 체계가 필수다. 특히 실제 해체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약점인 만큼, 고리 1호기 해체를 통해 실증 기반 기술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의 경우, 현재 해체 관련 법령은 원자력안전법에 일부 규정되어 있으나, 해체 전담 법체계 마련과 인허가 절차의 명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준, 주민 수용성 확보 방안, 국제 규정과의 정합성 등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원전 해체는 단일 기업이 수행할 수 없고, 설계·제염·절단·운반·복원 등 다양한 기업이 협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 참여 확대, 기술 인증 체계 마련, 표준화된 공정 매뉴얼 개발 등이 요구된다.

우리나라에게 원전 해체 산업은 처음 가보는 길이다. 이 때문에 이미 해체 경험이 있는 미국이나 독일 등과 협력하고, 해외 해체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국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줄어든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원전 해체 R&D 예산으로 1597억7300만원을 편성했으나, 실제로는 21.5% 줄어든 1254억1300만원만 집행됐다. 정부의 계획된 예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원전 해체 생태계 조성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고리 1호기 해체는 단순한 설비 철거를 넘어 국내 해체 기술 내재화와 전문 인력 양성, 산업 생태계 조성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