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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강력한 숙취의 추억 '캪틴큐'

[기업과 옛 신문광고] 강력한 숙취의 추억 '캪틴큐'

'1. 아버지에게 절을 받을 수 있는 술, 2. 기억의 절반을 삭제당하는 술, 3. 시체도 구토를 한다는 술, 4. 조상님도 제사상을 엎어버리는 술, 5. 불면증 환자도 재우는 술.'

인터넷에 이런 우스갯소리와 함께 올라온 술, 독한 양주가 있다. 바로 '캪틴큐(CaptainQ)'. 많은 사람들이 '캡'틴큐로 알고 있겠지만, '캪'틴큐다. 1980년대나 199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한 중장년층이라면 캪틴큐에 얽힌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술을 마실 자격을 얻은 대학생들은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겁도 없이 이 술 저 술 마시고는 쓰러지곤 했다. 술에 대한 내성이 없는 몸이라 25도짜리 소주를 반병만 마시고도 구토를 했던 어린 학생들에게 강력한 충격을 준 술이 캪틴큐다.

1970년대 즈음까지는 대학생은 물론 어른도 양주를 마신다는 것은 언감생심의 사치였고, 그럴 수도 없었다.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나아지고 경제가 크게 성장했던 대망의 1980년대에 들어서자 양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베리나인' '길벗' 등 국산 양주 판매량이 늘어났고, 그보다 더 대중적인 양주들이 등장했다.

그 하나가 1980년 1월부터 시판된 캪틴큐였다. 그러나 캪틴큐는 따지고 보면 일반적인 양주, 즉 위스키가 아니라 럼주였다. 한국 전통주가 아닌 서양의 술이니 양주는 맞지만 정통 위스키는 아니었다. 사실 당시에는 위스키가 뭔지, 럼주가 뭔지 잘 알지도 못했다. 그냥 값싼 양주로 알고 40도짜리 독주를 삼켰다.

광고에서는 위스키는 대맥(보리)을 원료로 하고, 럼은 사탕수수가 원료인 점만 다를 뿐 제조 과정은 동일하다고 소개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값이 싼 이유는 주세 때문이며, 품질은 비슷하다고 했다(조선일보 1980년 9월 16일자·사진). 광고에도 나와 있듯이 일반 위스키의 주세는 200%인데 럼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40%였다. 당시 베리나인 골드 소비자가는 한병에 1만5000원 정도였는데, 캪틴큐는 3000원이었다.

경쟁자가 있었는데 코냑을 흉내 낸 '나폴레온'이다. 1977년에 처음 나온 캪틴큐의 선배 격으로, 주정에 브랜디 원액을 17.9% 섞은 같은 '저가 양주'였다. 캪틴큐가 남성다움을 강조했다면, 나폴레온은 부드러움을 내세우며 여성들도 마실 수 있는 술이라고 선전했다.

사실 럼주는 고급술은 아니다. 더욱이 캪틴큐는 한국 주정에 약간의 럼 원액과 향을 첨가한, 무늬만 럼주였다. 멋모르고 입속으로 쏟아부은 사람들은 최강의 숙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연예인이 방송 프로에서 "캪틴큐는 당시 숙취가 없는 양주로 유명했다. 왜냐하면 마시고 잠들면 다다음날 깨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그래서 애인이 없는 솔로들은 12월 23일에 캪틴큐를 마시고 크리스마스를 잠든 채 보낸 뒤 25일에 깨어난다는 농담도 나돌았다고 한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 때문에 캪틴큐는 큰 인기를 얻었다. 1991년에 아예 럼 원액을 빼고 향만 입힌 일반 증류주로 바뀌었다. 가격은 더 싸졌다. 문제는 그 후 발생했다. 값이 싸져 가짜양주 제조에 쓰인 것이다. 마시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판매량이 줄지 않는 이유였다. 가짜 양주는 캪틴큐에 에탄올과 물, 우롱차 등을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제조사인 롯데주조 측은 2015년 생산을 중단했다.
35년 동안 판매된 병수는 약 865만병이었다.

비록 엄청난 숙취로 주당들을 괴롭혔지만,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양주를 마시는 기분을 내게 해 줬던 캪틴큐는 아쉬움 속에 퇴장했다. 그런데 엄청난 속 쓰림의 고통을 주었음에도 잊지 못한 술꾼들 사이에서 재고로 남아 있는 캪틴큐가 최고 8만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살 수만 있다면 추억은 아픈 것이라도 얼마든지 산다는 뜻일까.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