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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또 벌어진 참변, 또 후회하는 어른들

[강남시선] 또 벌어진 참변, 또 후회하는 어른들
정지우 사회부장

아이들의 생명이 또다시 화마에 스러졌다. 사고는 각각 다른 날, 다른 지역, 다른 아이들에게서 벌어졌지만 비극의 패턴은 너무나 닮았다. 부모가 생계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집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에게 불길이 덮쳤고, 미비한 화재 예방·진압 시스템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구조의 손길은 제때 닿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어른들은 뒤늦게 회의를 열고 지켜지지 않았던 그동안의 약속들을 재차 내놨다.

지난 2일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8세, 6세 자매가 숨졌다. 부모가 야간 영업을 위해 자리를 비운 지 30분도 안 되어 불길이 치솟았고, 자매는 각각 거실과 현관 앞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불과 9일 전, 부산진구의 아파트에서도 10세, 7세 자매가 새벽 화재로 생을 달리했다. 새벽 청소 일을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안방에서 잠들어 있던 아이들이었다.

지난 2월 인천에서는 병원 투석 중인 아버지, 식당에 출근한 어머니 대신 혼자 집을 지키던 12세 어린이가, 지난해 12월 울산에서는 이사를 앞둔 아버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5세 아이가 변을 당했다. 참혹한 사건의 시간은 다르지만 배경은 같았다. 아이는 혼자였고, 화마는 그 틈을 노렸다. 공통점은 '돌봄의 부재'였다.

'아동 돌봄 공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다. 하지만 수차례의 참변에도 체감할 변화는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방과 후 돌봄 실태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 4명 중 1명(26%)은 방과 후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혼자 보내는 시간은 평균 2시간28분에 달했다. 하루 한 시간 이상 혼자 있는 아동 비율은 37%에 이른다. 10명 중 3~4명이다.

2020년은 인천에서 코로나19로 급식을 받지 못한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나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된 때다. 큰 충격을 받은 사회는 연일 '돌봄 강화' 구호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후에도 개선된 것은 없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가족 실태조사 분석 연구'에 따르면 30분 이상 집에 혼자 있는 초등생 비율은 42.6%였다. 부산과 울산의 화재도, 부모가 자리를 비운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비극이다.

또 정부의 긴급돌봄 서비스는 평균 배치까지 30일 이상이 걸리고, 10건 중 4건은 아예 매칭조차 되지 않는다.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혼자 두고 싶지 않다'고 해도, 현실은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 순간에 재난은 찾아왔다.

화재 예방과 진압 시스템의 문제도 뿌리가 깊다. 2018년에야 6층 이상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 이전에는 11층 이상만 적용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신축 또는 용도변경된 건물에만 해당된다. 소급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노후 아파트와 빌라는 기본적인 소방 장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과 제도를 다듬고 보완해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전수조사와 시스템 개선은 말뿐이었고, 예산과 인력 부족 탓만 했으며, 소관이 아니라며 뒷짐을 졌다. 정치권은 응답이 늦거나 아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현실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포기할 순 없다.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은 물론 사회도 시스템 구축에 함께 나서야 한다. 기존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단계적으로 소급 적용하고, 아동 중심 비상감지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학교·가정의 대피 훈련은 제도화하며, 돌봄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예산이 부족하다면 국가가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저 부모는 생계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아이들은 돌아오길 기다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공백조차 우리 사회는 지켜주지 못했다. 이번에도 바꾸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또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

jjw@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