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현 금융부장·마켓부문장
기준금리, 가계부채(부동산 가격), 경기회복 간의 '술래잡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가계부채와 경기회복은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놓쳐서도 안 되는 목표물이다. 부진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내려 유동성을 확대해야 한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경기회복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준금리 인하는 가계부채를 늘려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자극할 공산이 크다. 항상 반복되는 이 같은 딜레마가 중앙은행이 다른 요소들을 일절 배제한 채 경제지표상의 숫자를 토대로 금리 결정을 내리는 이유다.
'술래'인 기준금리 입장에서 첫번째 타깃은 가계부채였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했다. 부동산 가격이나 가계부채를 잡지 않고서는 통화정책이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차에 걸친 추가경정예산의 영향도 감안했을 것이다.
올해 들어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면서 지난 6월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6조2000억원 늘어나며 10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을 나타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5조1000억원이나 확대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국내총생산(GDP)의 90%에 가깝게 올라가 더 이상 커지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도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임계 수준에 와 있다"고 했을 정도로 가계부채는 심각한 수준이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달 27일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고강도 규제안을 내놓았다. 이후 서울 집값 상승세가 확연히 둔화되며 당장 큰 불길은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올해 하반기 집값 상승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부동산R114 설문조사 결과 2명 중 1명이 주택 매매가격의 상승을 점쳤다. 2021년 이후 4년 만에 제일 높은 수준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가 제자리를 지키는 사이 경기 상황은 나빠지다 못해 위기가 켜켜이 쌓이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장기침체된 가운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최후의 보루'인 수출마저 위축될 처지다. 미국의 상호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올해 상반기에도 수출은 이미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무엇보다 내수경기 침체가 걱정이다. 지난해 폐업신고를 한 사업자가 100만명을 넘어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절반 이상이 '사업 부진'을 이유로 내세웠고, 소매업과 음식점 등 내수부문 업종의 폐업이 두드러졌다. 오는 21일부터 시행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위기의 골목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소비와 수출이 개선되고 추경 효과까지 유입된다 해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GDP와 잠재 GDP의 격차를 의미하는 GDP 갭이 커지는 등 기준금리 인하의 당위성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경영 전문가 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가 향후 5년간 한국이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은의 가장 큰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한은 본관 2층에는 '물가안정'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최근 계속되는 폭염 등에 먹거리를 중심으로 체감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전반적인 물가지표는 2%대 초반의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총재의 말처럼 물가가 안정된 상황에서 성장과 금융안정 가운데 우선순위를 가리기란 쉽지 않다. 일부 해외 투자은행(IB)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높이는 등 저성장 우려가 다소 진정되고 있으나 서민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아우성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성장과 내수경기의 발목을 잡지 않는 절묘한 위기관리 방안이 절실한 때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금융부장·마켓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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