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말이다.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는 2020년 11만9000명에서 2024년 17만9000명으로 6만명 증가했다. 반면 취업이나 진학 준비 없이 쉬고 있는 29세 이하 비경제활동 청년인구는 올해 2월 50만4000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청년의 상당수는 일을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청년들이 쉬는 이유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일자리의 81%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으로 청년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미취업 청년 4명 중 3명 이상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체감하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은 현실적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 결과 청년의 53.5%는 임금과 복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았으며, 87%는 임금과 복지가 좋다면 기업 규모는 관계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복지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중소기업 상용근로자의 대기업 대비 복지비용 비중은 2020년 43.2%에서 2023년 34.8%로 감소하였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보육지원금은 9.9%, 건강·보건비용 13.9%, 휴양·문화·체육·오락비용 24.3%, 교통·통신비용 33.7%, 주거비용은 51.3%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복지는 곧 일자리 정책이다. 우수한 인력이 취업할 수 있는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려면 복지제도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중소기업 복지를 지역의 인력 유입과 고용유지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바라봐야 한다. 대기업은 이미 경쟁력 있는 복지제도를 통해 우수인재를 선점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자체적으로 복지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기가 어렵다. 중소기업 복지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중소기업 복지 지원은 근로자 개인에게 복지포인트를 제공하거나 지원금을 지급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근로자의 근무환경과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기업 대상의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사무공간 개선, 휴게공간 조성, 편의시설 설치 등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반영하여 재택근무나 원격회의 시스템 구축, 기숙사 운영, 출퇴근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복지는 근로자, 중소기업, 정부 등 노사정이 함께 책임지는 구조여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정책 연계도 필요하다. 중소기업 노사와 정부가 협력해 책임감 있게 복지제도를 실행한다면, 지역에 유입된 청년 근로자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핵심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소멸을 막고 대·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종업원 수요 기반의 맞춤형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중소기업과 정부가 매칭 방식을 통해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이 제도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이때 정부 지원은 바우처 형태를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의 뿌리기업 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을 우선적으로 선정해야 한다.
복지를 단순한 비용으로 여긴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이 떠나는 기업은 성장할 수 없고, 사람이 머무르지 않는 지역은 결국 소멸한다.
중소기업의 복지 향상은 결국 사람을 모으고 정착하게 만드는 투자다. 중소기업 복지를 일자리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 수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임금의 현실은 1년에 12번 직면하지만, 복지는 1년에 365번 체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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