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가영 건설부동산부
"사채라도 끌어다 넣어야지 뭐."
서울 아파트 청약 공고가 모처럼 많이 나온 이달 초, 한 업계 관계자가 청약 접수를 고민하며 꺼낸 말이다. 실제로 사채를 동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높은 분양가를 두고 나온 농담 섞인 반응이었다. 이번에 공급된 청약 단지들은 비교적 작은 평형의 분양가도 10억원을 훌쩍 넘겼다.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하기엔 부담이 큰 금액이다.
특히 이들 단지는 정부의 6·27 대출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막차 단지'로 일부 수요자들은 금융여력이 부족함에도 "일단 넣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수백대 1에서 수천대 1에 이르는 청약 경쟁률로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에 대한 기대심리와 주거안정에 대한 필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청약은 원래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실수요자에게 기회를 주고, 이를 통해 단계적으로 주거 수준을 높이는 '주거 사다리'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장에서는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번 막차 단지들만 보더라도 전용 59㎡ 기준 분양가가 12억원을 웃돌았다. 무주택 기간이나 가점이 아무리 높아도 손에 쥔 자금이 없으면 청약은 무의미하다. '현금 동원력'이 더 중요한 기준인 셈이다.
분양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대출에는 한계가 있으며 자산격차는 제도 접근성 자체를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가점이나 추첨방식이 남아 있더라도 사실상 자금여력이 기회의 전제조건이 됐다. 신혼부부나 청년 등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부족한 계층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제도는 형식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이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동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청약을 고려하는 이유는 '집'이 단순한 거주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주거는 일상의 기반이고 자산 형성의 수단이며 안정적인 삶을 계획하는 전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가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지 못할 때 그 영향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구조적인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청약제도가 누구에게 현실적인 기회로 작동하는지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제도의 틀을 유지하는 것과 그 틀 안에서 실질적인 접근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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