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미 경제부 차장
'극한호우'라는 이름의 비구름이 닷새간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자 국토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산사태와 침수, 옹벽 붕괴가 이어지며 1만4000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인명 피해도 컸다. 10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으며 공공·사유시설 1999건, 건축물과 농경지 2283건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19일 오후 기준).
이번 재난은 기후위기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복합재난임을 일깨운다. 침수는 곧장 농산물 가격을 밀어올리고, 폭염은 건강과 복지의 문제로 번진다. 재난이 반복될수록 사회는 지치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이 모든 현상이 '이상기후'로 치부되던 시대는 끝났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피해 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과거처럼 임시방편식 복구에 기대서는 다음 재난을 막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밀한 사전 분석, 예측력의 고도화, 기반시설 점검, 전담조직 확충, 예산의 체계적 강화다. 나라살림의 틀 자체를 새롭게 짜야 한다. 재난 이후의 복구가 아니라, 재난을 미리 막는 데 쓰이는 예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필요한 자원을 배치하겠다"며 "전 부처가 모든 자원과 행정력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내년도 예산안에 재해예방사업을 최대한 반영하라"고 주문했다.
이제는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피해를 줄였는가"가 예산 집행의 성과 지표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기후위기는 경제의 체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리스크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기상청이 공동으로 발간한 '기후변화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대응이 전혀 이뤄지지 않을 경우 2100년까지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6.3도 상승하고, 강수량은 16% 증가한다.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수준 대비 21% 감소하며, 매년 0.3%p씩 성장률이 떨어지는 구조적 저성장에 빠지게 된다. 지금의 명목 GDP(2411조원)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506조원 규모의 경제가 사라지는 셈이다. 반면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할 경우 GDP 감소폭은 2050년까지 10.2%, 2100년에는 13.1%로 완화된다.
이제 반복되는 충격에 매번 새롭게 놀라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후위기는 비용이 아니라 기초체력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다. 기후대응이야말로 성장률을 지키는 '경제정책'이자 '재정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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