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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의 직평직설] ‘존경하는 의원님’ 이젠 버려야

막말 일상화된 국회에서
‘존경하는’ 용어는 거북해
의원들 스스로 돌아봐야

[손성진의 직평직설] ‘존경하는 의원님’ 이젠 버려야
손성진 논설실장
'존경하는 OOO 의원님!' 국회의원들끼리 '의원님' 앞에 꼬박꼬박 붙이는 '존경하는'을 생략하자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많은 국민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고쳐지지 않으니 또 쓰게 됐다. 이웃 나라 의원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민생을 진심으로 돌보는 의원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더 높은 경칭을 써도 아무 상관없다. 우리 정치와 의원들이 '동물국회'니 '국개의원'이니 하는 비판과 비아냥을 들을 만큼 저급하니 듣기에 몹시 거북한 것이다.

"저를 존경하지 말고 보좌진을 존중하세요."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가 사퇴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한지아 의원에게 타박을 들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의원들끼리도 그래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20대 대선 후보 시절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존경하는'이 그저 듣기 좋으라고 붙이는 수식어에 불과함을 말한 것이다.

'존경하는 의원님'이라는 말을 쓰게 된 연유는 알기 어렵다. 국무위원들이 의원을 지칭할 때 마지못해 관성적으로 쓰는 수식어가 듣기에도 근사하니까 스스로 갖다 붙였을 수도 있다. 정말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회의원이 300명 중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도 될지, 알 수 없다. 존경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셀프 존경'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상대방 의원에게 "야" "너" "인마"라는, 시장 바닥에서도 잘 들을 수 없는 천한 막말을 내뱉는 지금 "존경하는"이란 경어를 쓰는 의원들의 내심은 어떨까.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을 것이니 습관적으로 쓰면서도 속으로는 찔리고 손발이 오그라들지 싶다. '존경하는'이 끝나기 무섭게 태도가 돌변해 험한 말을 주고받다 급기야 "존경하지 마"라고 고함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참으로 표리부동의 언행이 아닐 수 없다.

제헌국회부터 역대 국회 회의록을 찾아 보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시 제정된 국회법에 '의원 상호 간에 경어를 쓴다'는 규칙이 있었다고 하나 너무 당연한 말이다. 2대 국회 회의록에도 신익희 국회의장이나 조봉암 부의장은 "OOO 의원 말씀하세요" "OOO 의원을 소개합니다"라며, '존경하는'을 붙이지 않았다.

백두진 국무총리도 "OOO 의원 질문에 답변드리겠습니다"라고만 했다. 경멸이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라고, 시쳇말로 상대방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듯하는 지금보다 훨씬 점잖은 풍경의 국회였지만, 굳이 '존경하는'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국회부터 간간이 사용하더니 근래 들어 일반화됐고 지방의회에도 번져 있다.

'존경하는'은 격식을 중시하는 영국 의회의 언어 관습을 갖다 쓴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의원들은 동료 의원들을 부를 때 'The Right Honourable' 'My Honourable' 등을 쓴다.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갖고 있고 의회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영국 의회이기에 이런 호칭은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논쟁할 때는 상대방 호칭을 못 쓰고 3인칭으로만 부른다. 우리처럼 막말을 하다간 바로 퇴장당한다. 영국에서도 권위주의를 버리자는 뜻에서 'honourable'을 폐지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의원을 경칭 없이 이름 뒤에 '군'(君)을 붙여 부른다. 친구에게나 쓰는 '군'은 친근하면서 겸손한 느낌을 준다. 미국에서는 'gentleman' 'gentlewoman'을 주로 쓰는데 'member'로 부르는 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역사나 문화가 다른 나라들이 동일한 호칭을 쓸 수는 없다.
무분별하게 차용해서 쓰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존경하는'을 쓰더라도 그만한 자격만 갖추면 논쟁의 대상이 될 것도 없다. 국민의 살림이나 나라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고 권력을 얻고자 아귀다툼을 벌이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국민들이 역겨움을 느끼는 게 아니겠나. 국회의원 스스로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지 곰곰이 자문해 본다면 쉽게 결론이 나올 것이다.

tonio66@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