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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케데헌과 킹오킹

[강남시선] 케데헌과 킹오킹
정순민 문화대기자

최근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봤다. 하나는 '케데헌', 즉 넷플릭스에서 지난달 말부터 방영하고 있는 K팝 소재의 미국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고, 다른 하나는 '킹오킹', 즉 부활절 시즌 미국에서 개봉해 대박을 터뜨린 한국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이 두 편의 애니는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던지고 있어 흥미롭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K컬처의 힘을 보여주는 이른바 '코리아니즘'의 가능성에서부터 K콘텐츠산업의 미래 전략 모델까지 논의해볼 이슈가 제법 많다.

먼저 본 애니메이션은 '케데헌'이다. 지난달 20일 '케데헌'이 처음 넷플릭스에 공개될 때만 해도 사실 K팝의 인기에 편승한 그렇고 그런 미국 애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공개 직후 '케데헌'이 쏟아낸 기록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공개 1주일 만에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영화 부문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 '골든' '유어 아이돌' 등 작품 속에서 불려졌던 12개의 노래 중 7곡이 빌보드 차트 '핫100'에 동시 진입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또 '케데헌'의 전 세계적 인기 덕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판매하는 까치호랑이 배지, 갓 키링, 자개 손거울 등 뮷즈(뮤지엄 굿즈)가 덩달아 잘 팔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연출자 매기 강 감독이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다는 '코리아니즘'이다. '케데헌'은 한국계 캐나다인인 매기 강 감독 외에도 한국 출신 스태프가 다수 참여했지만, 분명 미국 자본과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 내에서 만들어진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구현된 이야기와 정서가 "철저히 한국적"이고, 무엇보다 이 기획이 미국 제작사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건 이른바 'K컬처'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케데헌'의 성공으로 우리가 직접 벌어들이는 돈은 한푼도 없지만 여기서 구현된 '코리아니즘'은 K컬처를 넘어 K푸드, K뷰티, K관광, K헤리티지 등 소위 'K의 확산'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킹오킹'을 본 것은 이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킹오킹'이 지난 4월 부활절 주간 북미지역에서 먼저 개봉해 대박을 터뜨린 후 지난 16일 뒤늦게 국내 공개돼서다. 지난 4월 11일 북미 3200여개 극장에 동시에 내걸린 '킹오킹'은 개봉 첫주 1903만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종교 기반 애니메이션으로는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이집트 왕자'의 오프닝 기록(1450만달러)을 뛰어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 제작사가 한국인 감독과 스태프를 동원해 한국 자본으로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이 흥행 대박을 터뜨리자 미국 언론들이 대서특필한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킹오킹'이 북미에서 거둬들인 흥행수익은 무려 6867만달러로, 이 역시 한국영화 역대 북미 흥행 최고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놀랍다. 지금까지 한국영화가 미국에서 기록한 최고 흥행 타이틀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5384만달러)이 가지고 있었다.

'킹오킹'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 작품 어디에서도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 자본에 의해 미국에서 제작된 '케데헌'에는 한국적인 것들이 넘쳐나는데, '킹오킹'에선 한국적인 것은 물론 'K'의 그림자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킹오킹'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북미 시장을 겨냥한 명확한 기획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 그리고 할리우드 수준의 기술력과 내러티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지난 10년간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해온 모팩스튜디오 장성호 대표 겸 감독의 뚝심도 한몫했을 것이다.
오래전 'K팝 전도사' 박진영은 "한류에서 국가나 민족이라는 딱지를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콘텐츠산업이 국경을 넘어 보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야 한다"면서다. '케데헌'과 '킹오킹', 이 두 편의 애니메이션이 K콘텐츠, 혹은 K콘텐츠 산업이 가야 할 두 길을 알려주는 듯해 흥미롭다.

jsm64@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