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재부 제공 뉴스1
[파이낸셜뉴스]30일(현지시간) 큰 틀에서 타결된 한미 무역협상의 미국 측 '키맨'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었다. 한국과의 마지막 일주일의 협상 과정 중 그의 역할은 단연 주도적이었다.
당초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실무 협상 과정을 주도할 것으로 보였었다. 그러나 상호관세 부과일(8월1일)까지 남은 약 일주일 동안 러트닉 장관의 비중이 급격히 커지면서 한미협상의 막판 조율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그는 한국 측 카운터 파트들에게 때로는 조언으로, 때로는 압박하며 미국의 입장을 관철시켰다. 한국의 관료들은 평생 투자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노회한 협상술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이 일본과 유럽연합(EU)에 비해 우위를 유지해 왔던 자동차 관세 2.5%의 이점을 공자로 '헌납'하도록 만들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우리가 유지해 왔던 자동차관세에서 일본, EU에 비해 우세하던 지위를 뺴앗아 버린 주역도 그였다.
러트닉은 관료출신이 아닌 투자은행 출신의 억만장자 금융자산가이다. 2018년 9월 기준, 캔터 피츠제럴드 지분의 60%를 소유하면서 순자산만 최소 15억 달러(2조 793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역사학 교수인 아버지와 화가 겸 조각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러트닉은 퀘이커교도들이 만든 학교인 해버퍼드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1983년 투자은행인 캔터 피츠제럴드에 입사해 '샐러리맨 신화'를 쓴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했다. 30살 때인 1991년 회사 사장 겸 CEO가 됐고, 1996년에는 회장직에 올랐다.
암호화폐 친화적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거액 선거자금 후원자였다. 그는 작년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강화 및 제조업의 복원 공약을 적극 옹호해 왔다.
'경제 사령탑'격인 재무장관을 놓고 베선트 장관과 막판까지 경합했지만 결국 상무장관으로 낙점된 그는 트럼프 경제·무역팀에서 '돌격대장' 역할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
베선트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과속'을 막는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면 러트닉 장관은 각종 방송 출연 기회 때마다 격정적인 어조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홍보하면서 협상 대상국들을 압박하는 돌격대장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러트닉 장관의 생일 때 그의 자택을 방문해 직접 축하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애정을 보여왔다.
그는 2001년 9·11 테러로 형제를 포함해 직원 658명을 잃었다.
당시 그의 사무실도 뉴욕 세계 무역 센터 꼭대기 층에 있었지만, 건물 붕괴 당시에는 출타중이어서 화를 면했다. 이후 그는 회사 이름을 따, 테러와 자연 재해로 피해를 입은 가족을 돕는 캔터 피츠제럴드 구호 기금을 통해 자선 활동도 해왔다.
2024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위한 정권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연방정부 주요 보직 4000개 자리의 인사를 주물렀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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