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웅 영상미디어부장
'명품의 경제학'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경제학자가 있다. '미국의 마르크스'란 별칭을 가진 소스타인 번드 베블런 교수다. 명품의 경제학은 쉽게 말해 가격이 비싸면 더 잘 팔린다는 것이다. 호황과 불황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가격이다.
올해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여러 차례 가격을 인상했음에도 이들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위 백화점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베블런 효과라고 부른다. 물론 '오늘이 가장 싸다'를 의식해 추가 가격 인상에 앞서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한 오픈런도 있다. 하지만 불황 그늘에 노출돼 팍팍한 생활을 이어가는 서민들에겐 낯선 풍경이다.
베블런은 가격이 비싼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고 칭했다. 유한계급의 사람들은 가치가 가격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들에겐 품질과 무관하게 오로지 비싸다는 이유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고, 그래서 값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난다. 그러면서 베블런은 이런 행위를 '과시적 소비'라고 표현했다.
경제활동에 '과시적 소비'가 있다면 소셜미디어와 SNS에는 '과시적 행태'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나를 포장하기'로 규정한다. 나를 포장하기 위함이 아닐 경우는 그냥 재미를 추구할 뿐이다.
이런 과시적 행태에 쓴맛을 본 적이 있다. 최근 실제 겪은 일이다. 서울 둘레길이 21코스로 정비돼서 집에서 가까운 1, 2, 3 코스를 한꺼번에 걸어보고 싶었다. 가능한지를 따져보기 위해 블로그와 유튜브를 훑어본 결과 3개 코스를 5시간40분 만에 주파했다는 정보들이 제법 많았다. 이들이 등산 초보라고 밝힌 만큼 20㎞ 행군 경험을 가진 대한민국 육군 경력을 믿고 도전했다. 결과적으로 중도포기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 탓이 크다. 3개 코스는 총길이 18.6㎞로, 두어번 쉬면서 4시간 동안 걸었지만 저 코스의 절반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완주를 하지 못한 이유를 두고 운동부족 탓을 하며 수없이 금연과 금주 등을 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어간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찾은 결과는 소셜미디어에 나타난 수치와 차이가 컸다. 홈페이지에는 3개 코스 소요시간을 각각 2시간50분, 2시간50분, 2시간30분 등 총 8시간10분으로 안내했다. 4시간 걸어 절반 갔으니 정상적인 것이었다. 정말 5시간40분 만에 3개 코스를 주파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 정보를 믿고 걸음을 계속했다면 자칫 산속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특히나 요즘 같은 폭염에는 위험도가 높은 아찔한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비단 나만의 경험인가 싶었지만 SNS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SNS에 거짓투성이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모습들의 폐해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SNS가 사람 잡는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셜미디어인 만큼 '과시적 행태'로 인한 부작용 또한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과시적 행태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선 규제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거를 수 있는 역량을 높이는 방법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과시적 소비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베블런은 "자기가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인물인지를 타인의 눈앞에서 명백하게 증명하려는 경쟁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과시적 행태도 과시적 소비와 비슷하게 자신과 남을 비교해 뽐내거나 명성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를 재화의 낭비라고 했는데, 과시적 행태는 인터넷 낭비라고 해야 할까.
과시적 소비를 하는 유한계급은 고등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기부하는 등 사회환원에 힘써왔는데, 과시적 행태를 일삼는 이들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싶은지 묻고 싶다.
kjw@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