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전략' 대국민 소통 실패
기재부 힘 빠져 '낙지부동'꼴
'진짜 저력' 불황때 나오는 것
윤인대 기획재정부 차관보(가운데)를 비롯해 기재부 실·국장 관료 등이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 공용브리핑실에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 대해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올해 경제성장률 1%대 달성이 어려울 것 같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8%에서 0.9%로 크게 내려잡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0%대 성장은 1956년(0.7%), 2009년(0.8%) 두번 뿐이다.
이재명 정부는 적자 국채를 찍어 마련한 31조원 추가경정예산을 집행 중이다. 지난 5월 1차 추경까지 합하면 45조원에 이른다. 이 중 13조원이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소비쿠폰)으로 올 11월까지 일시에 풀린다. 그런데도 1%대 성장을 자신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 체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소비가 잠깐 살아났다해도 현금쿠폰 효과는 0.1%p 정도의 기여에 그친다는 추산이다. 올 민간소비(전망치 1.3%)도 전년보다 고작 0.2%p 높아진 수준. 게다가 현금 지원은 휘발성이 강해 효과는 딱 그때뿐이다. 내년 성장에 13조원을 뿌린 소비쿠폰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22일 성장률과 함께 발표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의 핵심은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초혁신, 공정 성장이다. 뭔가 달라 보이는 것은 AI 투자와 전방위 상용화 확대 정도로 보인다. 산업·노동 구조개혁, 규제 혁신에 관한 내용은 빈약하다. 첨단산업 육성이니 주력산업 고도화니 하는 것은 혁신·개혁·균형·성장을 외쳤던 역대 정부들도 다 한 것이다. 비전만 그럴싸했지 제대로 못했을 뿐이다.
지난 19일 기획재정부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언론에 미리 설명하는 브리핑을 열었다. 윤인대 차관보와 김재훈 경제정책국장, 강기룡 정책조정국장 등 기재부 인사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담당자까지 총 9명이 100여명의 기자들과 마주 앉았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질의응답식 브리핑은 공허했다. 성장 전략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질의에 따른 답도 적확하지 않았고 단절됐다. "내부적으로 검토 논의 중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금 밝힐 단계가 아니다" "추후 논의해 방안을 마련하겠다" "다음 예산안 발표할 때 얘기하겠다". 이런 식이었다. 필자가 정부당국의 정책 브리핑을 지켜본 것은 몇 년만이다. 그 사이 여러 상황이 달라졌다해도 행사는 실망스러웠다.
"기재부의 나라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제당국 기재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가 있었다. 10여 년 호경제 호시절, 세수가 풍족해 나라 곳간이 넘쳐날 때다. 덩달아 기재부 공무원들은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필자가 마주한 오늘의 기재부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예산을 떼내 기재부를 해체하겠다고 엄포하면서 기를 눌러버린 이유가 클 것이다. 조직 개편의 불확실성에 기재부 내부는 복지부동이 아닌 '붙어서 아예 떨어지지 않는 낙지부동'(이 대통령이 공직사회의 적극행정을 주문하며 한 발언)이 딱 맞아 보인다. 잘 나갈 때 털어내지 못한 인사 적체로 조직내 불만도 상당하다. 기재부 고위관료의 인사 출구였던 '4청'(국세청·통계청·조달청·관세청)의 수장(차관급)도 내부 출신이 꿰차자 그야말로 속앓이, 설상가상이다. 기재부 인사를 중용하지 않겠다는 정권의 메시지인즉, 차례를 기다리던 고위 관료는 일할 맛도 잃었을 것이다.
윤 차관보는 사전 브리핑에서 "죽을힘을 다해 성장률을 올리겠다"고 몇번을 얘기했다. 관료의 비장함보다 허약해진 우리 경제가 죽을힘을 다하지 않고는 성장률 1%대조차 올라서기 어려운 처지가 됐구나하는 씁쓸함이 앞섰다. 올해 나라 적자(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계속 불어나 120조원에 육박할 것이다. "씨앗(재정)을 빌려서라도 더 많이 뿌리겠다"는 이재명 정부는 재정을 더 써서라도 지역화폐 등과 같은 현금 지출성 '기본 사회'를 다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변변한 증세, 획기적 지출 구조조정이 없는 한 정부 정책에 드는 200조원을 적자국채 말고 무슨 수로 조달할 수 있겠나. 임기 5년간 400조원의 나랏빚을 늘린 문재인 정부도 있지 않은가.
이재명 정부의 경제비전은 '진짜 성장'이다.'진짜'가 대체 어떤 의미의 정책을 말하는지는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진짜 성장'의 선봉에 있어야 할 기재부조차 기껏 공들여 만든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맥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러니 다른 경제주체들은 오죽하겠나.
정부 정책도 기세다.
잔뜩 움추려든 기재부가 진짜는 아닐 것이다. 재정 균형에 필요한 직언을 하고 치밀한 예산을 짜 집행하는 것. 잠재성장률 3%를 향해 '진짜 성장'하려면 기재부가 제 역할을 단단하게 해야 한다. '진짜 저력'은 나라 살림이 어려울 때 나오는 것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