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한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미국 대법원이 본격적인 구두 심리에 들어간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비상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중대 현안으로, 대법원 판단에 따라 향후 미국의 통상 정책뿐 아니라 행정부와 의회의 권력 균형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관세 자체는 다른 법적 수단을 통해 대부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관세 부과 절차는 지금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5일(현지시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 부과 사건에 대한 구두 변론을 진행한다. IEEPA는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법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 발동할 수 있는 137개의 법적 권한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을 근거로 캐나다·멕시코·중국 등 주요 교역국에 대한 관세를 단행했다. 올해 1월 취임 직후 세 차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상호관세 및 글로벌 관세(전 세계 10%·특정 국가·기업 최대 50%) 부과 명분으로도 IEEPA를 활용했다.
와인 수입업체 등 중소 기업 5곳이 지난 4월 국제무역법원(USCIT)에 소송을 제기했고, 이어 오리건주 등 12개 주가 소송에 참여하면서 법적 분쟁이 본격화됐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통령이 IEEPA를 통해 전 세계 수입품에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다. 1심(국제무역법원)과 2심(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IEEPA가 '수입 규제' 권한을 부여하되 '포괄적 관세 부과 권한'까지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역사적으로 미국 대통령들은 IEEPA를 국제 테러조직 자산 동결, 무기·첨단 기술 수출 제한, 외국 정부·공직자 금융 거래 차단 등 적대국 제재에 사용해 왔다. 관세 부과에 적용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에 이목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관세 없이는 국가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세계가 수십 년간 미국을 이용해 왔다. 관세가 미국의 안보를 지켜줬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 권한을 제한할 경우 ▲비상사태 부존재 ▲무역 불균형은 '이례적·비상한 위협'에 해당하지 않음 ▲IEEPA는 관세를 허용하지 않음 등 세 가지 논리를 택할 수 있다. 반면 대법원이 대통령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권한이 제한되더라도 관세 조치 자체는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대법원 판결에서 패하더라도 다른 관세 수단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무역법 122조(150일간 15% 관세) ▲관세법 338조(차별국에 최대 50% 관세) 등 대체 수단을 검토 중이다.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부과되고 있다.
뉴욕대 로스쿨 산하 브레넌센터는 "이번 판결은 무역 정책을 넘어 권력분립의 향방을 결정할 사안"이라며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동원해 의회를 우회하는 것이 일상 통치 수단이 될지 좌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사진=뉴시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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