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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진단] 진보 정권의 3親 정책…'경제 약체' 대만의 체질을 바꾸다

대만의 도약 3대 비결
친기업·친성장·친시장
민진당 주도 첨단산업 집중육성
10년새 1인당 GDP 비약적 성장
반도체 R&D 25% 세액공제 등
유연한 노동정책에 여야 '협치'
노조는 정치색 덜고 권익 활동
저임금 체계도 기업성장에 한몫

[논설실의 뉴스 진단] 진보 정권의 3親 정책…'경제 약체' 대만의 체질을 바꾸다
손성진 논설실장
[논설실의 뉴스 진단] 진보 정권의 3親 정책…'경제 약체' 대만의 체질을 바꾸다
올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2년 만에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한다. 대만 정부는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3%로 제시했다. 여러 기관에서 전망하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1% 안팎이다. 환율을 감안한 한국의 올해 1인당 GDP 예상치는 지난해보다 0.8% 감소한 3만5962달러다. 세계 순위는 3단계 하락한 37위로 예상된다. 대만의 예상치는 11.1% 증가한 3만7827달러로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만년 열등감을 느끼던 대만이 드디어 한국을 꺾은 것이다.

한국과 같은 듯 다른 대만 경제의 강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특이한 것은 대만은 한국과는 달리 진보 정권이 강력한 친기업적 성장 정책을 이끌어 보수 정권보다 경제성장률을 더 크게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대만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배경을 세가지로 나눠 살펴본다.

1.진보 정권의 실용주의적 경제개혁

대만의 약진은 진보 정권인 민진당 정부가 이끌고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만은 수출 부진과 투자 위축, 내수 침체로 경제가 심각한 상태였다. 2016년 집권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강력한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했고, 지난해 당선된 같은 당 라이칭더 총통이 이어받아 결실을 맺고 있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첨단산업 중심의 혁신으로 대만 경제가 부흥하기까지 단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차이잉원 전 총통은 '스마트 타이완'을 기치로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이끌었다. 세계 1위 파운드리 반도체 기업 TSMC를 필두로 산업 구조를 첨단 하이테크 산업으로 바꿔 나갔다. 남부 가오슝 과학단지에 축구장 46개 크기의 2나노미터(㎚) 반도체 공장을 지어 시험 생산에 들어간 것은 한 사례일 뿐이다. 가오슝 과학단지는 1990년대에 보수 정권인 국민당이 첫 삽을 떴고 민진당이 이어받아 더 속도를 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녹색 에너지·방위·첨단·바이오·스마트 정밀기계 등 5대 신산업도 연구개발(R&D) 단지를 조성해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2.전폭적 기업 지원과 야당의 협력

민진당은 친기업·친성장·친시장의 '3친(親)' 정책을 강력하게 펴고 있다. 그런 점은 한국의 진보 정권과 판이하다. 대만 경제가 단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업의 R&D 비용 25%를 세액공제해 주는 파격적인 '산업 혁신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 첨단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하루 최장 12시간, 연속으로 12일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근로법을 개정했다.

대만의 진보 정권은 기업들이 애로를 겪는 일이 생기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가뭄이 들어 공업용수가 부족하면 농업용수의 물길을 바꿔 쓰도록 하는 데 앞장선다. 대만의 여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회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대립하지만, 경제에서만큼은 손을 맞잡고 협치를 한다. 보수 야당이 주장하는 유연한 노동과 친기업 정책을 진보 정권이 주도하니 야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3.상대적으로 온건한 노조와 저임금

대만에도 당연히 노조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계에 비해 활동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다. 1980년대까지 계엄령이 존재했던 대만은 한국처럼 노동운동이 억제돼 왔다. 우리와 같이 대만의 노조활동도 1980년대 말부터 활발해졌다. 다만 한국의 민노총과 같은 전국적인 조직의 주도 아래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대규모 투쟁을 벌이는 일은 드물다. 물론 근로법 개정 당시 대만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민진당 정부는 법을 후퇴시키지 않았다. 대만의 노조는 한국처럼 정치적 성향을 크게 띠지 않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편이다. 대만의 여야가 모두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며 친기업적 정책을 펴서 노조는 입지가 좁다.

대만의 평균임금은 한국보다 낮다. 한국의 대기업 임금이 세계적으로 높은 것은 강성 노조의 투쟁 탓이 크다. 고임금은 가계와 노동자에게는 좋지만 기업의 이익을 줄여 투자를 저해한다. 올해 대만의 최저임금은 우리 돈으로 월 126만원 정도로 한국보다 현저히 적다. 지난해 대만의 대졸자 5명 가운데 1명이 초임으로 최저임금을 받았다.
올해 대졸자 평균 초임은 149만원으로 연봉으로 치면 1780만원 정도다. 우리나라 대졸 정규직 신입 근로자 평균 초임 3675만원의 절반 정도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대만의 젊은이들은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높아진다고 해도 크게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