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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유럽의 안보 불안이 부른 징병제 부활

[강남視角] 유럽의 안보 불안이 부른 징병제 부활
윤재준 국제부 부장
내년 2월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4년이 되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서는 큰 돌파구가 생기지 않고 있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불안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냉전 종식과 옛소련 해체 후 일부 유럽 국가들은 방위비 지출을 줄이고 징병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 합병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유럽 국가들은 방위비 증액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어느 때보다 군사력 강화가 시급해졌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오면서 중국 견제에 더 초점을 맞추는 안보정책을 실시하자 미국으로부터 제공받았던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프랑스와 독일 군 당국은 러시아가 2029~2030년이면 서유럽을 공격할 준비를 갖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보여주듯 올해 들어 징병제를 다시 도입하는 유럽 국가가 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EU) 국가 중 10개국이 의무복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내년 중반부터 청년 자원 군복무 제도를 시작할 것이라며, 직접 러시아를 거론하지 않은 채 "위험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 1996년 의무복무제를 중단한 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인 2001년에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실시하던 징병제를 폐지했다.

지난달 프랑스 시장 회의에서 파비앵 만돈 프랑스군 참모총장은 프랑스군이 앞으로 3~4년 내 러시아와의 충돌에 대비해 더 강해져야 한다며 "자녀들을 잃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발언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다음 해인 2015년 징집 제도를 부활했으며, 스웨덴과 라트비아는 각각 2017년과 2023년 이를 도입했다.

약 20년 동안 중단했던 크로아티아가 올해 징병제를 부활했으며 덴마크는 지난 7월 여성도 징집 대상에 포함시켰다. 복무 기간도 4개월에서 11개월로 연장했다.

러시아와 길이 1331㎞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는 지난 1939년 옛소련의 침공을 받은 이후, 유럽 국가 중 가장 큰 규모의 예비군 체제를 구축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대대적인 방위비 증액을 통해 유럽 최강의 군으로 키운다는 계획으로, 독일 의회는 이달 군 징병제 부활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과연 유럽 국가들이 병력을 목표만큼 확보할지는 전망이 불투명하다. 사회 분위기가 자유로운 유럽에서 의무복무제 도입은 쉽지 않다. 프랑스 여론 조사에서 73%가 자원하는 군복무제도에 찬성했으나 25~34세에서는 60%로 낮았다.

유럽의 Z세대는 군 복무나 전쟁 발발 시 싸우겠다는 의지가 약한 것으로 지적됐다.

자국이 전쟁에 휘말릴 경우 싸우겠다고 응답한 EU 시민은 전체 응답자 가운데 3분의 1 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을 침공한 과거로 인해 독일 시민들은 군사대국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고, 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깊게 머리에 박혀 있다.


나토 소속 유럽 회원국들은 트럼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 방위비 지출을 올해 안에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유럽이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하려면 현재의 총병력 147만명에 30만명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은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jjyoo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