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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디지털 전환'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

[기자수첩] '디지털 전환'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
김현지 생활경제부
얼마 전 친가에 다녀왔다. 여느 때처럼 배불리 차려주신 밥과 이어지는 간식, 과일까지 배에 꾹꾹 욱여넣었다. 노곤해진 채로 집에 돌아가려는데, 할머니께서 조심스레 "뭐 하나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얼른 돕겠다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홈쇼핑을 자주 이용하시는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구매하면 똑같은 상품을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앱을 설치하는 것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이후 과정에서 계속 애를 먹고 계신 모양이었다.

앱에 들어가보니 나에게는 매일 밥먹듯이 하던 것들이 할머니 시선에서는 쉽지 않았다. 첫 단계인 회원가입부터 간편인증이니 뭐니 창이 여러 개 뜨는데 무슨 의미인지 직관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함께 진땀을 빼며 회원가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혹시 다음에 로그인이 풀리면 할머니 혼자 다시 하실 수 있을지 걱정됐다.

상품구매 단계로 넘어가니 더 큰 난관이 있었다. 할인을 받기 위해서는 카드 등록을 해야 하는데 조그마한 글씨를 꼼꼼히 읽어야 했다. 이어 등록 카드로 결제하기 위해서 결제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등 복잡한 절차가 남았다. 뒤로 갈수록 '혼자 계실 때도 하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커졌다.

시간이 길어지자 할아버지가 오셨다. 할아버지는 "어차피 지금 배워도 혼자서는 못한다"며 "아이들 번거롭게 하지 말자"고 등을 떠미셨다. 마음 같아서는 몇 시간이든 더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결국 발길을 돌렸다. 집에 와서도 아쉬운 마음이 내내 남았다.

영화 '월-E'처럼 누워만 있어도 모든 게 해결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집에서 50m 거리인 편의점조차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프라인의 가치는 지워지고 있다. 온라인 커머스의 급성장으로 집 앞 슈퍼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무인 가게가 채웠다. 가끔 오시는 노인분들은 '잘 몰라서 계산이 느리다'며 멋쩍어 하신다. 편하자고 만들어진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장벽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일상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은행은 점포를 줄이는 대신 비대면 창구를 확대하고 어르신 대상 금융교육 등 최소한의 안전망을 유지하는 중이다.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런 기본적 장치조차 없으면 정보기술(IT) 소외층은 더 깊은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든, 국가가 제도적 보완을 하든, 디지털 전환 속 소외를 방지하는 장치가 절실하다.

빠르게 달려가는 현실 속에서도 '느리게 걷는 사람들'을 돌아볼 때다.

localplac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