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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만 가면 두통에 소화불량… 김부장 정신건강이 위태롭다[Weekend 헬스]

직장인 괴롭히는 불안과 우울
일상속 경쟁·불확실성 늘어나며
급성 스트레스가 신경계 자극
중·장년은 가슴 답답함 같은 화병
젊은층은 공황발작 형태 나타나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硏
"약물치료 병행 꾸준히 관리해야"

회사만 가면 두통에 소화불량… 김부장 정신건강이 위태롭다[Weekend 헬스]
고도의 경쟁과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대, 직장인의 정신 건강이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정신 건강 관리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18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 교수는 "현대인의 불안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약성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스트레스가 신경계를 공격한 결과"라며 "이제는 감정이 아닌 데이터와 과학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2013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를 이끌며 약 4만5000명에 달하는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그는 "불안과 우울로 촉발된 공황은 마음의 문제를 뛰어넘어 신경계와 생리 반응이 무너진 상태"라며 "개별 상담이나 의지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회사만 가면 두통에 소화불량… 김부장 정신건강이 위태롭다[Weekend 헬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공황장애 급증…"스트레스가 결정적"


전 교수에 따르면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황장애가 급증하는 이유는 급성 스트레스가 자율신경계를 직접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는 공황장애와 한국형 스트레스 증후군인 화병을 "같은 스트레스가 연령과 신체 조건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는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한다.

젊은 층에서는 심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뛰고 숨이 막히며 어지럼증이 동반되는 공황 발작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 중·장년층에서는 신경계 활성도가 떨어지면서 두통, 소화불량, 만성 통증, 가슴 답답함 등 화병이나 신체화 증상으로 변질된다.

공황장애는 심혈관계(심계항진), 호흡기계(호흡 곤란), 신경계(어지럼증·시야 이상), 체온 및 배뇨 조절 이상 등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 전 교수는 "공황 발작은 환자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해 쓰러짐, 골절 등 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공황장애 치료와 관련해 전 교수는 약물치료의 중요성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미 공황 발작이 나타났다는 것은 자율신경계가 상당 부분 손상됐다는 의미"라며 "상담만으로 버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약물치료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공격을 막아주는 세로토닌 계열 약물을 보충해 신경계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전 교수는 "공황장애·우울증 치료제는 내성이 없고,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상황이 사라지면 언제든 감량·중단할 수 있다"며 "다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당장 스트레스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최소 1년 이상 '완치'가 아닌 '관리'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음 케어에서 정신건강 코칭까지

기업정신건강연구소는 현재 삼성그룹 여러 계열사와 한국 유수의 IT 기업 등 27개 기업에 47명의 전문의를 배치하고, 이들과 협업하며 직장인 정신건강 관리의 기준을 만들고 있다.

연구소의 프로그램에 들어온 기업들과 소속된 직장인들의 평가가 좋기 때문에 가입을 희망하는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IT·게임 등 첨단 산업 기업들은 사고 예방보다 창의력과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정신건강 코칭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전 교수는 "코칭은 질병 치료가 아니라 정상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라며 "성격 보완, 리더십 강화, 대인관계 개선 등 개인 맞춤형 목표를 설정한다"고 설명했다.

코칭 프로그램의 30~40%는 자녀 진로, 양육, 부부 갈등 등 가족 상담이 차지한다. 전 교수는 "가족의 안정이 곧 직원의 업무 집중도와 창의력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기업 정신건강 관리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개인정보 보호다. 연구소는 기업 클리닉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위탁 운영 방식을 고수하며, 의료진과 시스템을 인사부서와 철저히 분리했다. 진료 기록 역시 전산이 아닌 수기 차트로 관리해 정보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신건강 관리 모델을 치료 중심에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연구소는 직장인 정신건강을 예방(1차), 선별(2차), 치료(3차)를 넘어 코칭과 역량 강화(4차) 4단계로 관리한다.


이 같은 관리 모델은 디지털 기반 프로그램인 '심케어 3.0'과 '마음ON케어'를 통해 가능하다. 심케어는 초기 1.0에서 시작해 현재 3.0까지 업데이트가 진행되면서 더 정교한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전 교수는 "정신건강 관리는 이제 개인 치료를 넘어 기업 경쟁력과 지역 의료 발전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며 "데이터와 과학에 기반한 정신건강 관리 모델은 현대인의 불안을 가장 현실적으로 풀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