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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가 고대한 '북한 매체 개방' 사실상 본격화…기대 효과는?

학계가 고대한 '북한 매체 개방' 사실상 본격화…기대 효과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외교부(재외동포청)·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2.1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학계가 고대한 '북한 매체 개방' 사실상 본격화…기대 효과는?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실린 '당 창건일 80주년' 기념 행사 관련 보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학계가 고대한 '북한 매체 개방' 사실상 본격화…기대 효과는?
통일부가 지난 2월 공개한 남북대화 사료집의 모습 2025.2.13/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정부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를 일반 국민에게 개방하는 방안 마련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바뀐 시대상'에 맞는 정책 기조의 적극적 변화를 주문하면서다. 이를 두고 21일 학계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 확대 차원에서 '때가 됐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신문 본다고 빨갱이 안 된다"…北 매체 전면 개방 본격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진행된 통일부의 2026년도 업무보고에서 "북한 노동신문을 국민들한테 못 보게 막는 이유가 뭐냐. 국민들이 선동에 넘어가 빨갱이가 될까 봐 그런 것이냐"며 이는 "국민을 주체적 존재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취급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을 믿어야지, 국민들 의식 수준을 너무 폄하하는 것"이라며 "북한 자료를 개방하고 아무나 접근할 수 있게 해주자"라고 사실상 북한 매체 및 자료에 대한 전면적 개방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현재 정부는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당국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파하는 관영매체와 북한이 체제 선전용으로 운영하는 선전매체 및 북한 당국이 주로 해외와의 소통을 위해 만든 사이트 60여 개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적 표현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학계를 중심으로 북한의 매체를 보는 것이 곧 북한 체제에 대한 '우상화'로 이어지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통제된 방식이긴 하나, 주요 언론과 학계를 통해 북한 매체의 주요 내용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고, 남북이 현실적으로 '이념 대결'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오히려 북한 매체 접속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과해 북한에 대한 연구의 폭이 제한되면서 북한을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지 못해 성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대통령의 문제 제기도 이같은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이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를 본다고 해서 북한의 사상을 따르게 되는 시대가 아닌데도 규제가 과하다는 차원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통제가 오히려 북한에 대한 왜곡된 인식 혹은 '구시대적 관점'이 사회적으로 여전히 통용되도록 하는 한계만 노출한다는 지적도 정부 내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만연한 '가짜뉴스' 등의 폐해를 고칠 수 있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바뀐 시대적 환경에 따라 법과 현실의 '괴리' 없애는 차원도

현재 인터넷을 통한 북한 매체 접속은 전면 금지돼 있지만, 일반 국민이 북한 자료를 열람하고 싶을 때는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의 북한자료센터와 국회도서관 등 제한된 장소에서 신원과 연구 목적 등을 선명하게 밝힌 경우에만 열람이 가능하다. 정부는 연구 목적으로 북한 매체는 물론 북한 당국이 발행하는 각종 서적 등을 수시로 반입해 자료센터에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대다수의 국민이 가설사설망(VPN) 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북한 매체에 접속하는 것이 '완전히 통제'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해 수사 당국도 개인이 단순히 북한 매체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국회에서도 이같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없애기 위한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 12일엔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 관련 사이트의 접근과 열람을 허용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는 접근·열람·유통이 모두 금지돼 있지만, 개정을 통해 개별 국민이 어디서든 북한 매체를 접근·열람은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통일부 역시 '2026년 중점 추진 과제' 중 하나로 '북한 자료 대국민 공개 확대'를 선정하고, 이를 위해 △북한 사이트 개방 △노동신문·북한방송 등 북한 자료 공개 확대를 위한 법제적 기반 마련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앞으로 국회 등과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구체적인 열람 방식과 개방 시점 등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은 인터넷 전면 개방이 우선순위로 상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국민, 北 실상 꿰뚫어 볼 것"…보수 정부 때도 '전면 개방' 추진

이번 이 대통령의 지시를 두고 야권에서는 '국가 안보 위협'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고, 북한 매체 공개도 아직은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는다는 학계의 제언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같은 정책이 보수 정권에서도 추진돼 왔다는 점에서 '이제 개방의 때가 됐다'는 시각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도 남북 간 언론·출판·방송의 단계적 개방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고, 우선 노동신문을 시범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역시 북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하며 북한 매체를 개방하는 것이 우리에게 '득'이라는 인식을 보인 바 있다.


윤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이었던 권영세 전 장관은 지난 2023년 1월 29일 한 방송에 출연해 "우리 국민들은 성숙하기 때문에 노동신문이 선전문구로 가득 차 있더라도 북한의 실상을 꿰뚫어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선제적인 개방이 나중에 북한의 개방을 요구하는데 하나의 무기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탈북민 '1호 박사'인 김영희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북한 매체 개방에 대해 학계에서는 기대감이 매우 크다"며 "일각에서는 북한 매체가 그저 선전선동 도구일 뿐이라는 의구심도 있지만, 학자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추진하는 내부 정책과 대외 노선 등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1차 원문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정책연구소 연구교수는 "언론계나 학계 입장에서는 편리함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관련 사안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개방'에 대한 심리적 반발심이 있을 순 있기 때문에 우선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단계적 개방을 통해 열람 시스템을 확립해 나가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