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총량억제 정책 강화할듯
예측가능 설계로 부작용 줄여야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진=뉴스1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1일 내년에도 가계부채 총량관리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총량 증가율을 경상성장률보다 낮게 설정해 연착륙을 추진할 방침이다. 사실상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대출을 바짝 조이겠다는 것이다. 현재 가계부채가 19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는 점에서 부채 안정화는 분명 중요한 정책 과제다. 과도한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계부채 억제 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다.
우선, 필요한 실수요자에게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연간 총량 목표를 정하면 특정 시기에 대출 쏠림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이는 실제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게 심각한 불편을 낳는다. 주택 구입이나 생활안정 등 정당한 목적의 자금 수요도 막히는 것이다. 특히 연말 결혼이나 이사 등 계절적 자금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에 대출이 막힐 수 있다. 실제로 연말을 앞두고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분은 목표치보다 7% 이상 적은 상태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옥죄기가 시작되면서 일부 은행은 주택 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까지 중단한 상황이다.
풍선효과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도 요구된다. 제도권 금융의 대출이 막히면 자금 수요는 다른 경로로 대출처를 찾아 이동한다. 최근 신용대출이 12월 들어서만 5000억원 이상 급증한 점도 이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제2금융권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자금 수요가 옮겨갈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풍선효과를 일으키는 수요에 대해 옥석 구분이 필요하다. 실수요와 투기성 자본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도움이 필요한 실수요자를 보호하면서 투기적 수요는 차단하는 세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생산적 금융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가계대출을 획일적으로 억제해서는 곤란하다. 은행권 가계대출의 70%가 주택담보대출이며, 이것이 생산적 영역으로의 자금 흐름을 막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모든 주담대가 마치 비생산적인 것처럼 낙인 찍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실거주 목적의 주택 구입자금과 투기적 다주택 담보대출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가계대출을 줄인다면서 획일적으로 총량규제를 단행하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대출 목적과 성격에 따른 차별화된 접근이 바람직하다.
내년에도 가계대출을 둘러싼 금융소비자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당국에 제시한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는 2% 수준이다. 이는 예상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4.0%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렇게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거나 자금이 음성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해선 안 된다.
가계부채 관리는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다. 어떤 정책이든 단기적 성과 달성에 급급하다 보면 시장 내 혼선과 반발을 낳기 마련이다.
결국 경제주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고 정책 신뢰마저 잃을 수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부채 안정화라는 큰 방향을 유지하되, 실행 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 관리방안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수요자들이 혼선에 빠지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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