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사회부장
스포트라이트는 늘 사건의 한가운데를 비춘다. 현장은 자극적인 한 장면으로 요약되고, 다음 이슈가 오면 시선은 빠르게 옮겨간다. 대규모 범죄, 대형 사고 등에서 방송 화면과 신문 지면은 강력범 검거 장면, 긴박한 추격, 요란한 사이렌 등만 주로 다뤄질 뿐 그 이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어느 현장이든 '누군가는 제자리에서 자신을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지하지 못했거나, 알고 있어도 수시로 잊어버리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이 같은 시민의 안전을 떠받치는 장면은 대부분 고요한 상태에서 진행된다. 새벽에 모니터 앞에서 눈을 비비고, 차가운 물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구조대상을 찾거나 기록과 자료 더미 속에서 시간과 싸우는 경찰들이다. 화려한 순간보다 반복되는 책임이 먼저인 직업이기에 이들의 하루는 '눈에 띄지 않는 성실'로 채워진다.
파이낸셜뉴스 사건팀이 취재한 '넘버 112' 시리즈에 따르면 경찰청에는 한국경찰사편찬 태스크포스가 꾸려져 지난 10년의 경찰 역사를 정리한다. 10년 단위로 책을 펴내는 조직이라는데, 한 권이 1500쪽에 달한다니 숫자만으로도 체감이 온다. 경찰 조직 변천과 제도의 변화, 수사 흐름과 성과를 기능별로 나눠 자료를 모으고 균형을 지키며 글로 남기는 일이다. 이른바 '기록'하는 경찰이다. 이런 기록은 사건의 '끝'을 적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가 참고할 '맥락'을 남긴다. 현장에서 뛰던 시간이 책장 사이로 들어가는 순간, 경찰들의 경험은 각 개인의 기억을 초월한 공공의 자산이 된다.
땅 아래에선 또 다른 형태의 '조용한 싸움'이 있다.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순식간에 일어나고, 사람의 흐름 속에 숨어버린다. 피해자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때 수사는 눈에 보이는 단서가 아니라 '흩어진 흔적'을 잇는 일로 바뀐다. 수사관들이 CCTV 화면을 수백 번, 수천 번 돌려보며 걸음걸이 하나, 방향 전환 하나를 붙잡는 이유다. 결국 범인은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물 위에서도 팽팽한 정적이 흐른다. 투신자 구조, 변사자 인양, 행사 경비와 경호까지 물 위의 질서를 맡는 한강경찰대 활동은 늘 골든타임과 맞닿아 있다. 다리 난간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망설이다 신고가 늦어지는 몇 분, 그 '찰나'가 생사를 바꾸기도 한다. 고요 속에서도 중압감이 감도는 현장이다.
그래서 한강에서 일하는 경찰들은 "확신이 있을 때만 신고하라"는 부담을 내려놓아 달라고 시민들에게 부탁한다. 잘못 본 것이라면 그 자체로 다행이고, 위험한 상황이라면 신고가 더 큰 일을 막는다는 설명이다.
실종을 다루는 팀 역시 대중의 관심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임무다. 그러나 하루에도 여러 건씩 쏟아지는 실종신고 중에서 범죄 연루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스포트라이트와 상관이 없더라도 언제나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금융과 통신 기록을 확인하고, 이동 동선을 좇고 CCTV를 뒤지는 일이 일상이다. 누군가에겐 행정처럼 보이는 작업일지라도 실종자 가족에겐 단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업무철학이 이들의 동기가 된다.
예방을 담당하는 경찰 또한 화려하지 않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일의 최대 성과는 '아무 일도 없었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은행 지급일에 맞춘 순찰, 신고가 잦은 공간의 반복점검, 비상벨 위치 조정 같은 작은 조치들이 체감안전을 바꾼다. 뉴스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시민에겐 안도와 편안함을 남긴다.
이 장면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태도는 묵묵함이다. 지하의 화면 앞에서, 강 위 바람 속에서, 기록의 종이 더미 앞에서 강렬하지는 않으나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킨다. 스포트라이트는 중심을 비추지만, 그 뒤에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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