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범 경제부 차장
김성환 장관이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지 4개월, 환경부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개편된 지 83일이 흘렀다. 그동안 장관은 수차례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그때마다 반복된 서사가 있다. '지구의 멸종'과 '인류 문명의 전환기'라는 경고다.
산업화 이후의 탄소배출, 이상기후, 탄소중립이라는 연결고리를 내세우며 정부와 산업, 시민이 모두 문명적 전환을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애구심'이라는 단어도 김 장관이 노원구청장 시절부터 쓰던 단어다.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 또는 '내가 태어난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지역과 환경, 나아가 지구 전체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거대한 서사가 정작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탈석탄 이행 시계표는 여전히 흐릿하다.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폐쇄한다고 했지만, 설계수명이 남게 되는 발전소는 어떻게 할지, 석탄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생계는 어떻게 할지 대책이 없다. 민간의 투자여건을 어떻게 만들지, 재생에너지의 병목은 여전히 논의에 머무르고 있다.
기후부는 환경부의 확장판이 아니다. 전력, 에너지믹스, 산업 구조조정, 투자유인, 원전과 재생의 조정, 탄소가격제도, 국제교역 리스크까지 다뤄야 하는 경제부처다.
'인류 문명의 전환기' '멸종을 피해야 한다' '애구심으로 기후위기를 넘어야 한다'와 같은 문장으로는 발전사, 철강, 화학 기업을 움직일 수 없다. 재생에너지의 계통접속 문제도, 수소 인프라 투자도, 국제 탄소국경조정 문제도 설득할 수 없다.
기후정책은 산업·재정·무역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장관은 정치적 상징어에 머물러 있다. 정책이 따라오지 않으면 결과는 역풍뿐이다. 산업계는 '말뿐인 규제정치'라고 비판하고, 시민은 '세금과 전기요금만 오르는 기후정책'이라고 반발한다. 결국 기후정책의 정치적 정당성은 떨어진다.
기후위기는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망, 탄소가격, 투자, 기술, 세제, 법의 문제다. 83일 동안 기후부는 어떤 제도적 혁신을 설계했나? 탈석탄 폐지 일정은 시장과 연계해 조정되고 있는가? 탄소감축 목표의 구체적 로드맵은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멸종'이라는 단어는 책임회피다. 김 장관이 이제 꺼내야 할 문장은 '문명을 전환하자'가 아니라 '무엇을 언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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