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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여는 지역의 미래, 사회연대경제

[기고] 다시 여는 지역의 미래, 사회연대경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날카로운 발톱도, 두꺼운 가죽도 없는 나약한 인류가 맹수들 틈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단순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연대의 본능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위기극복과 문명발전의 원동력으로 '연대와 협력'을 꼽았다. 개인들이 공통의 가치와 규범으로 뭉쳤기에 우리는 거대한 사회를 이루고, 국가와 시장이라는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맹수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AI)과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양극화와 고용불안, 기후위기, 지방소멸 등 복합적 난제가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과거의 중앙집중식 시스템으로는 지역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해법은 다시 '본능'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이 공동체로서 손을 맞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길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제20대 국회에 이어 21대, 22대 국회에서도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을 대표발의하며 제도화에 힘써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풀기 어려운 복합적 난제의 해법이 사회연대경제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연대경제는 다양한 구성원이 민주적으로 참여해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이다. 지역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고, 발생한 이익을 다시 지역에 투자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방식으로, 이는 국민주권정부가 지향하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구현과도 맞닿아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도 크다. 유엔은 2023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촉진' 결의를 채택하며, 사회연대경제를 빈곤·기후·고용 등 복합적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2025년을 '국제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하며 연대와 협력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 동력임을 재확인했다. 필자는 2025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사회연대경제 글로벌 포럼 영상축사를 통해 국민주권정부 출범을 계기로 사회연대경제를 더욱 활성화해 나가겠다는 한국의 정책 방향을 국제사회와 공유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연대경제 논의에서 다시 적극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의지의 표명은 그간 우리 사회에 축적돼 온 사회연대경제의 경험과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우리나라에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소셜벤처 등 5대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3만개를 넘어섰다. 경기 성남시는 청소 용역업체를 시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18개 사회적기업이 육성됐고, 종사자도 늘었다. 종사자 다수가 주주로 참여해 임금 기준을 엄격히 적용, 고질적인 용역 구조 속 저임금 문제도 개선했다. 경기 여주시 구양리 '햇빛두레발전소'는 67가구 전원이 협동조합에 참여해 태양광 발전을 공동 운영하고, 전력 판매수익을 주민 맞춤 마을버스와 무료 식사 등 생활복지로 환원하고 있다. 농촌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도 사회연대경제의 안착을 위해 기본부터 다지고 있다. 지난 10월 행정안전부를 주무부처로 지정한 이후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예산사업을 확대 편성했다. 방향과 정부의 책무를 담은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도 서두르고 있다. 범정부 협의체와 민간자문단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구축, 지방정부의 전담부서 설치도 지원 중이다. 민간위탁에 적합한 공공서비스도 발굴·확산,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지역에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넓혀갈 계획이다.


메마른 땅에 물을 부으면 금세 다시 말라버리지만, 씨앗을 심고 뿌리가 내려 자생할 때까지 돌보면 비옥한 토양을 얻을 수 있다. 사회연대경제는 일회성 지원책이 아니라 복합적 난제를 풀고 연대와 협력의 사회자본을 쌓는 지속가능한 지역 재생전략인 것이다. 사회연대경제가 전국 곳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