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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중견국 외교를 위한 ODA 전략

[포럼] 중견국 외교를 위한 ODA 전략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가 한국 외교에 새로운 전환점을 요구하고 있다. 관세를 압박 수단으로 삼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달 초 발표된 미국의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난 10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을 비판하던 트럼프의 변심과 미국의 '전략적 후퇴'는 오히려 동맹국들에 대한 비용부담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 안보협력마저 거래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미국의 변화 앞에서 한국은 수동적 동맹 의존을 넘어 보다 능동적 중견국 외교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안보 측면에서 외교 다변화는 이제 필수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울 뿐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등 주요 협력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가 시급한 이유다. 지역별 거점국가를 중심으로 다층적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급망 복원력, 첨단기술 거버넌스, 기후변화 대응 등 핵심 영역에서 기능적 다자협력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다극화된 국제사회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리외교만이 급변하는 세계질서에 대응할 수 있다. 특히 주요 선진국들이 자국 이익 중심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재편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원조정책도 전략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마침 5년마다 수립되는 ODA 기본계획(2026~2030년)과 중점협력국 조정이 정부 차원에서 준비 중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적기다. 개도국의 성장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단순한 자금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분쟁과 난민, 기후변화, 전염병 확산 등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전통적 개발 모델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다. 선진 공여국과 수원국, 민간부문, 국제기구 등 다양한 주체 간 연대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남긴 공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국제개발처(USAID) 폐쇄와 함께 대규모로 원조를 삭감하면서, 동남아·중동·아프리카에서 중국이 빠르게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한국이 '신뢰받는 중견국'으로 입지를 구축할 기회가 있다.

우선 ODA 지원 효과를 높이려면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선 통합적 접근이 필수다. 민간부문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기업의 해외진출과 ODA를 연계하여 개발 효과와 경제적 실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델을 확대해야 한다. 다양한 금융수단 활용도 중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개발재원 부족분이 4조달러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혼합금융을 통한 민간재원 동원 확대가 절실하다. 개발금융을 통해 시장에서 개발자금을 조달하고, 기존의 양허성 차관은 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보증과 지분투자를 통해 사업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


능동적이고 다변화된 지역 외교와 전략적 ODA를 통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이 국제적 리더십을 확보하고, 독자적 외교 공간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통해 한국이 중견국가로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적 사고가 시급한 시점이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라는 새로운 지평은 포용적 협력외교를 위한 능동적 설계에서 열릴 것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